기생충 제국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 궁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풀은 흙의 양분을 얻어먹고 살아가고, 소는 풀을 뜯으며, 인간은 소를 잡아 먹고,
죽은 인간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풀에게 먹힌다.
거대한 자연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먹고 먹히고, 돌고 돌며, 서로에게 기생하고 양분이 되어가며... 
얼핏 삼류 SF 소설같은 표지에 제목에서 부터 딱 그런 늬앙스가 풍겨나는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은 다른 무엇도 아닌 정말로 기생충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세상에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고, 인간이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의 반의 반도 발견해내지 못할 것이다.
발견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변이가 일어나고, 진화는 계속되며, 새로운 종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니까. 인간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기생충의 역사를 400페이지쯤되는 이 책에 다 담을수는 없듯이,인간은 자연의 비밀을 모두 밝혀내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어리석은 종족일지도 모르겠다.
 
"기생충"하면 촌충이나 십이지장충, 기껏해야 20세기 중반까지 인류를 괴롭혔던 메디나 충정도를 기억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엄연히 말하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도 기생충류에 속하므로,
해마다 감기에 걸리는 우리 인간들은 늘 감기 기생충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말라리아가 사실은 모기가 옮기는 기생충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면병의 원인이 사실은 체체파리가 옮기는 기생충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떤 기생충들은 영화 "에일리언"에서처럼, 숙주의 살과 피를 갉아먹고 뼈와 껍질을 뚫고 나와 숙주를 갈기 갈기 찢어버리고, 또 어떤 기생충은 자신이 살아가기에 유리하도록 숙주의 뇌를 조종하기도 한다. 무서운 일이지만, 기생충에 숙주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초월로 대단해서,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영특한 생존방식에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기생충은 좀더 큰 숙주에게 옮겨가기 위해 달팽이 자신들도 모르게 세상에 노출된 햇빛으로 이끌고, 물고기를 수면 바로 밑으로 이끌어내며, 개미의 뇌에 기생하여 개미의 뇌근육을 모두 먹어치우고는 탄탄한 개미 머리에 머물러 안전하고 따뜻하게 성충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작은 개체에서 있을 때부터 좀더 큰 개체로 옮겨가기 위해 큰 개체를 유혹하는 향을 개발해내고, 더 큰 개체들은 기생충이 곤충 숙주에 머물러 발산하는 향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렇게 작은 개체에서 큰 개체까지, 기생충들은 교활할 정도로 자신의 활동영역을 늘리는 영특한 생물체이다. 누가 기생충을 열등한 생물이라 칭했는가. 그들은 분명 먹이 피라미드의 최고지위에 올라서있는 고등생물이다. 세상에 불필요한 생물이 어디있냐만은, 기생충이야 말로 생태계를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인 것이다.
 
그들은 동물의 진화에도 관여한다.
각 기생충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숙주(먹이)에게 알맞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당하는 숙주의 입장으로써는 이 기생충을 피해야 잘 먹고 잘살수가 있는 것이다.
좀더 흔하지 않은 객체가 되어 기생충의 시스템을 피해야 살아남는다.
모든 종에 성별이 생긴 근원에는 기생충의 역활도 한몫한다. 좀더 다양한 개체로 변이해야 기생충들을 헷갈리게 할수 있으므로, 동물들은 성별을 가지게 되고,(물론 이것만이 원인은 아니지만..) 어느 동물이나 나름대로 기생충을 퇴치할수 있는 자기들만의 비법을 가지게 된다.
인간만이 기생충을 막거나 퇴치하는 약을 개발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
기생충의 침입을 받은 침팬치는 평소 먹지 않던 약초들을 찾아먹고, 심지어는 애벌레조차도 평소 먹지 않던 독이 든 미나리를 먹어 기생충의 침입을 막는다.


그러나 기생충이 모두 지들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며, 악의 무리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선도 악도 아닌, 자신들에게 적합한 획기적인 생존본능을 익히며 살아가고 있는 성공한 생명체인 것이다.
좀더 진화된 기생충일수록 똑똑하며, 그들은 숙주를 죽이면 자신들도 소멸해버린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왠만하면 서로 공생하는 관계를 가지려 노력한다.
기생충으로 인해 죽어가는 인구는 전세계에 아직도 넘치고 넘치지만, 현대에 들어 철저한 위생관리와 항체의 발견으로 인체에 심각한 위험을 미치는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는 법.
기생충의 침입을 겪지 못한 인체의 면역계는 이전보다 훨씬 약해졌고, 심지어는 면역체계가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요즘 들어서 (특히 도시에서) 흔해진 병들중에 장염과 크론병, 알레르기성 질환(비염, 천식, 아토피, 알레르기성 피부병 등)은 나약해진 면역계가 지나치게 예민해져 자연을 견디지 못해 발생하거나, 또는 면역계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한쪽에서는 기생충에 걸려 장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체에 유해한 기생충 없이도 저 혼자 제 몸을 공격해서 골골대며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기생충은 열등한 것, 징그럽고 불결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치명적이지 않을 뿐이지 인간의 몸에는 수많은 기생충이 살아가고 있고, 그것들은 때로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게 해준다. 그 대표적인 예로 대장균이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생존을 위해 기생충을 이용하는 방법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기생충을 이용한 백신의 개발이라던지, 기생충을 이용해 농사에 해를 미치는 해충을 박멸한다던가, 인간이 기생충이 숙주에게 침투하는 방식을 좀더 정교하게 알아낼 수만 있다면, 병든 자에게 장기를 이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정말 놀랠 노자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기생충의 이용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들 멋대로 자연을 함부로 이용하거나 변형하는 것에 대한 죄를 자신들이 받는다는 것도 참 놀랍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물체는 세상에 홀로 존재할수 없는 기생충이다.
우리 인간은 흙과, 풀과, 동물, 이 지구 모든 것에 빚을 지고 살아가는 기생충인 것이다.
숙주를 병들게 만들고 자신의 구미에 맞춰 싹 갈아치워버리는 짓은 매너없는 기생충들이나 하는 짓이지만, 인간은 그런다. 이 거대한 자연을, 한 종을 멸종시킬 정도로 먹어치우고, 나무를 밀고 산을 깍고 물을 고갈시킨다.
책속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은 기생충에게는 나타난 지 얼마 안되는 새로운 숙주일 뿐"이라는 말. 유구한 역사를 지나 숙주와 공생하는 법을 배운 이 영특하고 지혜로운 생물체에게
이 지구에 뒤늦게 나타난 후배로써 우리 인간은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사다놓은지 꽤 오래된 책인데, 뒤늦게 읽고 진심으로 감탄을 하면서 읽었고, 거대한 감동을 받았다. 자연은 무한하고, 인간이 무슨 짓을 저지르던 간에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먹이 사슬의 공존을 이어가며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방금 나타나서 금방 멸종해 버리는 생물이 될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기생충"이라 불르는 생물체들의 생명력이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볼수 있는 이 작은 기생충 제국에 담겨있는 무한한 세상,
자연이란 인간이 몇천년을 연구해도 다 밝혀내지 못하는 신비의 보고가 아닐까.
메디나 충은 20세기 중반까지 인간을 괴롭히는 악성 기생충이었지만, (누군가는 그림에서 몇번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리에서 기생충을 막대기로 뽑아내는 그 유명한 기생충!) 지금 멸종위기에 있는데도 인간은 아직까지도 메디나 기생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수 없다고 한다. 인간은 이 작은 기생충 하나 밝혀내지 못하는 존재인데, 어떻게 자연을 거스르고 지배할수 있겠는가.
이 광활한 자연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물은 이 자연에 기생해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파괴하지 말 것이며, 지배하려 들지 말아야 할것이다.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고, 엄청난 정보와 함께 무한한 자연의 지혜에 감동받을수 있는 좋은 책이다. 다소 징그러운 표지에 속지 말고, 뜨악 할만한 초반부에 혹하지 마시고,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멋진 책, 꼭 놓치지 마시길!!
인간은 이 우주의 티끌보다 못한 존재임을, 그래서 광활하고 지혜로운 자연에 경이와 감사를 아무리 표현해도 아깝지 않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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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2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 제국'이라니, 제목이 강렬하네요ㅋㅋㅋ
거대한 감동에 흥미롭기까지 하다니, 읽고 싶어집니다.
일단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어요^^

Apple 2008-01-24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쥬베이님 맘에도 드실지 모르겠네요. 정말 괜찮은 책이긴 합니다..^^

러치퍼푸 2008-10-0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읽고 바로질렀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