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Mr. Know 세계문학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던가. 그때의 내가 중학생이었는지 초등학생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주말에 누워 TV를 틀어놓고 낮잠을 즐기다가 보게된 영화가 "전망 좋은 방"이었는데,
딱히 재밌었던 기억도 없고 아주 감동받았던 기억도 없었는데 묘하게 배우들은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당시에는 이름을 몰랐지만 후에 다른 영화를 통해 알게되었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헬레나 본햄 카터가 등장하는 푸르른 녹색과 결벽증적일정도로 하얀 옷이 두드러지게 각인되었던 영화, "전망 좋은 방".
재작년에 나왔던 E. M. 포스터 선집을 통해 영화 "모리스"의 원작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너무도 아름다운 책 장정에 홀딱 반해 불이 나케 주문한 것이 벌써 1년반 전.
이제서야 제대로 보게된 "전망좋은 방"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영화의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고,
(물론 내가 잠결에 본 탓에 잘못 기억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이런 장르를 "로맨틱 코미디"라고 불러야 할까나.
빅토리아식 엄격한 예의범절과 금욕주의속에서도 피어나는 "단 한번의 키스만으로도" 잊을수 없었던 사랑의 성공담.
아주 아주 옛날부터, 이야기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쏟아져 나오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각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설명이 되기도 한다.
신데렐라의 성공담이 요즘 드라마에서 아직까지도 활용되고 있듯이,
사랑이야기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으면서도 사랑받는 것은 누구나 이런 긴장감 넘치는 연애사건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노처녀 사촌언니를 대동하고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루시 허니처치(이름마저 왠지 달콤하다.)는
피렌체에 자신들이 묶기로한 펜션의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망좋은 방을 바랬건만, 전망좋은 방은 엉뚱하게도 영국인 부자(父子)여행객들에게 가있는데...
친절하게도 아버지 에머슨은 루시와 그녀의 사촌언니 샬롯에게 방을 양보하는데,
아니 왠 걸.. 이 여자들은 정색을 하며 호의를 거절한다.
왜냐면, 겉치레에 묶여 사는 빅토리안 영국인들에게 그것은 말도 안되는 과잉친절이며,
그것을 빌미로 대체 무슨 수작을 벌이려는지 의중을 알수 없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비브 목사까지 끼어들면서, 이 호들갑스러운 방 양보전(?)은 대략 마무리 짓고
루시는 원하던 전망좋은 방에 묶에 되는데...

여행지에서 빠지는 사랑이야 말로 가장 로맨틱한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면서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란, 자질구레한 물건을 사오는 것 밖에 없었던
순박한 처녀 루시는 세상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원초적 고독감에 휩쌓여 있는 염세주의자 청년 조지 에머슨과의 모호한 애정전선에 휩쌓이는데...
예의범절 보다도 실리를 중요히 여기는 에머슨 부자는 여러 사람들에게 평판 안좋기로 유명하고, 자신이 생각해도 "뭘 모르는" 루시는 그런 평판에 휩쓸려,
한번의 키스에 "살고 싶어졌다"고까지 말하는 이 우울한 청년 조지 에머슨에게 끌리는 마음을
애써 혐오감으로 표출시킨다.

끌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피렌체에서 도망쳐버린 루시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든다.
자신과 똑같이 예의범절과 겉치례에 묶여 살아가는 조각같은 남자 세실.
자신을 마치 예술작품처럼 대하고, 자기애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모든 사람을 굽어보는 나쁜 버릇을 가진 세실은 비록 누구나 "신사"이며 최고의 신랑감으로 인정할지는 몰라도,
루시는 피렌체에서의 단 한번의 키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세실의 새 빌라에 입주한 것은 다름아닌 에머슨 부자. 이 어쩔수 없는 운명에 루시는 자신의 과거(속의 키스)와 조지 에머슨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 못해 바들바들 떨게되는데...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득바득 아니라고 우기는 처녀의 거짓말.
역시 사람은 무엇보다도 진실한게 가장 좋다는 원초적인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가보다. 이 연애담이 더더욱 귀여운 것은 20세기 초반의 호들갑스러운 사람들의 과잉 행동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생 전반에 걸쳐 연애가 흔치 않기에 발생하는 무지로 인한 실수 때문이기도 하다.
조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남을 사랑할지 모르고, 남에게 맞춰줄지 모르는 이기주의자라 세실을 비난하지만, 루시 역시 관습에 얽매이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혐오하고 감정을 속이려 하지 않았나.
태어난지 100년도 넘은 소설이기에, 지금의 표현 방식과는 많이 다르고, 영국적인 수다까지 곁들여져 가독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기존의 관습에 얽매인 루시와 보이지 않는 관습보다는
실제의 무언가를 더 중요시 여기는 조지 에머슨, 두 사람의 연애 행보가 꽤 귀엽게 그려진 작품이다.

아름다운 묘사와 함께, 영화속의 녹색과 흰색이 어울어진 그림같은 풍경이 떠오르는 소설.
시간이 나면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
(그러고보니, E. M. 포스터 소설 원작의 영화들이 꽤 많네..)

역시 시집 안간다는 처녀 말은 믿는게 아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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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19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E. M. 포스터 전집 보관함에 담아놨어요^^
살까말까 고민중인데, 시즈님 서평을 보니 갑자기 구매욕이...ㅋㅋ
제 주변에도 독신으로 살거라는 누나가 있는데, 믿으면 안되는거죠??ㅋㅋ

Apple 2008-01-1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실은, 이렇게 말하는 저도 독신주의라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