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팽 양 열림원 이삭줍기 18
테오필 고티에 지음, 권유현 옮김 / 열림원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움을 몹시도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달베르라 불뤼는 이 남자는 눈이 어찌나 높은지, 그의 이상향적인 여인은 경이로울 만한 미모를 갖춘데다가, 조각상 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너무 어린 소녀여서도 안되고 너무 닳고 닳은 여자여서도 안되기 때문에, 세상을 어느 정도 알만한 미망인정도면 적당하며, 너무 조신해서도 안되며, 적당히 내숭을 떨며 교태섞인 몸짓으로 자신을 만족시킬수도 있어야 하며, 미인에게는 가난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돈도 많아야 한단다.

눈이 이마 위에 달려있으니, 왠만한 아가씨들이 예뻐보일리 없어 아직 애인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달베르에게 미모와 재력을 갖춘 미망인 로제트가 나타나는데, 열렬한 사랑에 빠져 뜨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그 때에,그는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분명 아름답고, 상냥하며, 자신이 원한 모든 것을 갖추긴 했지만,
언제나 상상에서 꿈꿔오던 이상향과 어딘가 어긋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는 미망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관계를 깰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로제트의 집에 수많은 여자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숱하게 거절하고도 원망받지 않는 남자가  나타나고, 대체 어떤 놈인지 궁금해 그를 보러간 달베르는 맙소사, 자신의 이상향에 딱 들어맞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 이상향은 바로 소문의 남자인 테오도르였던 것이다!
 
로제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관계를 깨지 않는 달베르는 한참이나 착각하고 있다.
로제트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어찌된 일인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안타까운 사랑이 있었고, 그녀는 그를 잊지 못하고, 그 사랑의 실패에 마음이 망가져 다소 방탕할 정도의 관계들을 가져왔던 것이다.
테오도르. 용맹한 기사이자, 다정한 연인이자, 의중을 알수 없는 신비의 대상.
아름다운 미남자가 온갖 매너와 예의를 갖춰 자신을 공주처럼 대접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한 때 그녀는 테오도르를 사랑하여 그의 고백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 고백이 너무 늦춰지자 참지 못하여 그를 유혹하기 까지 했으나, 테오도르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만, 결혼하지 않으려 했다.
한창 관심있는 듯 잘해주더니,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늘 내빼버리는 이 남자 테오도르는 과연 누구일까.
 
테오도르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는 사실 여자이다.
비록 치마를 입고 있지만, 정신에까지 치마를 두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녀(그)는 여자에게 주어진 한계가 지긋지긋했고, 또 자신에게 알맞는 완벽한 남자를 찾기 위해 남장을 하고 여행하다 여자를 숙녀처럼 대하다가도, 자기들끼리만 모이면 잠자리얘기까지 다 털어놓으며 여자를 경멸하는 남자들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다보니 남자라는 생물 자체가 지긋지긋해졌지만, 남자처럼 행동하다보니 사실 자신이 여자였다는 사실을 일부러 자각하지 않는 한은, 자신이 남자라고 믿게 되었다.
여행중 만난 로제트의 오빠와 친해지게 되어 로제트의 집으로 가게 되었고,
신사다운 매너를 다하다보니 로제트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 넘치는 사랑에 어쩔줄을 몰라 망설이다가, 여러사람의 원망만 사게 되어 그 집에서 도망쳐 버렸다.
오랜만에 찾아간 로제트의 집에는 로제트가 새로 사귄 남자 달베르가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을 집요하게 뒤쫓는 달베르의 시선이 느껴진다.
 
20세기 초반, 음란물 논란까지 올랐던 테오필 고티에의 <모팽양>은 남장을 하는 여자 테오도르(본명 마들렌 드 모팽)와 그녀에게 꼬인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거의 100년이나 지난 소설이니 만큼, 지금 봐서는 손톱만큼도 음란하지 않으나,
당시로써는 몹시 도발적이고 버르장머리없는 소설이었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지금봐도 엽기적이라 생각되는 결말 부분은 특히, 여러 논란에 휩쓸리기 충분했다.
나는 이전에 읽다가 토할뻔했던 <북회귀선>을 떠올리면서 그 정도의 난독증이 있지 않을까 정신을 바싹 차렸지만, 의외로 <모팽양>은 경쾌하고 음흉하게 익살스러우며, 지금 봐도 꽤 수긍이 가는 면이 많았기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보았다.

남장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자신이 남자인줄 알게된 모팽양,
자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다른 성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모팽양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자가 되었으나, 남자를 역겨워하게 되었고, 여자들의 사랑이 얼마나 수동적이며 안타까운지도 알게된 모팽양. 그녀는 이제부터 남자를 사랑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인가.
정교한 은세공품처럼 휘황찬란한 묘사와 시대물 다운 고전적인 분위기, 게다가 소설속의 모든 인물이 부르조아적인 탐미주의에 심취해 나른한 향략의 냄새마저 풍기는 <모팽양>은 나로써는 몹시 즐거운 소설이었다.
 
최근에 여러 예술작품에서 게이코드가 인기이다.(게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커피프린스>처럼 남장여자라도...) 만화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숱하게 나왔던 컨셉이지만, 최근에 TV에서도 왕왕 그런 코드가 보이는 것을 보니, 인기이긴 인기인가보다.
<모팽양>은 17세기에 실존했던 남장 여가수 마들렌 도비니를 모델 삼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최근에 인기있는 코드를 100년전의 소설에서 볼수 있다는 게 참 재밌다.
그런 면으로 요즘 사람이 보더라도, 이 소설은 무척 흥미진진히고 유쾌하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엽기적인 결말도 있으니까 말이다.
 
열림원의 이삭줍기 시리즈는 아웃사이더 문학을 다루는 시리즈인데,
<모팽양>을 읽고 나니 이 아웃사이더 문학이 내 입맛에 들어맞어서 다른 시리즈들도 무척 궁금해졌으니  한권씩 모아 심심할 때마다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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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1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시즈님 덕에 이삭줍기 시리즈 알고 갑니다^^
목록보니, 흥미로운 소설들이 많이 모여있는듯 해요
남장여자 모팽 양 이야기ㅋㅋㅋ 이 설정하나만으로 재밌을 거 같네요^^

Apple 2008-01-1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부터 눈독드리고는 있었지만,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아서,
일단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더라고요..^^흐흐...
쥬베이님도 읽어보세요~재밌게 읽으실수 있을거예요..^^강추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