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슬란드라고 하면 내가 떠올릴수 있는 것들은 뷰욕과 시규어로스 정도랄까.
몇몇 유명한 가수들 이외에는 전혀 모르기에 신비롭고 얼음같은 이름덕에 더더욱 신비로운 나라.
아이슬란드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낯설면서도
어딘가 우리의 정서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을 찾아서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다.
 
소설 표지처럼 비가 내리는 이미지, 끈적한 장마비같은 묵직하고 질퍽한 우울함을 남기는 소설 <저주받은 피>.
스칸디나비아의 추리소설상 '유리열쇄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한 노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자택에서 재떨이에 머리를 맞은 채 한 노인이 죽어있고, 현장에 도착한 형사 에를렌두르는
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집에서 발견된 아이의 무덤 사진을 발견하게 되고,
죽은 노인이 한때 강간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음을 알게된다.
4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린 여자아이, 딸의 죽음 이후 상심이 큰 나머지 자살한 어머니-
한때 그가 강간했던 여인과 그녀의 딸, 그녀의 일생은 이렇게 허망하게 사그러져갔고,
죽은 노인의 과거를 철저하게 따라올라가면서, 이 살인사건의 배후를 추적한다.

<저주받은 피>는 여러가지 과거사건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면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소설인데,
범죄자체와 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과거가 속속들이 등장해 옥수수가 팝콘으로 튀겨지듯이
사건이 사방으로 부풀어져만 가서 읽는 내내 '이게 대체 살인사건과 무슨 상관이야?'라는 의문을
지울수가 없었던 소설이다.
결국은 그의 죽음에 이 모든 과거가 이어져있다는 결론에 도달할수 있었지만,
뜬금없이 부풀어져만 가는 수사의 모습때문에 꽤 당황하면서 읽었고,
동시에 과거에서, 더 먼과거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 죽은 노인의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의 끈적한 집착이몹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피해자가 가해자였음이 드러나고, 사건 뒤에 왕년에 나쁜 짓만 골라 하고 돌아다니던  죽은 노인의 범인이 가슴아픈 사연이 있을까봐 두려웠으면서도 그런 슬픈 사연이 있기를 바라기도 했던 것 같다.
(차라리 수사를 그만두었으면 하는 바램도 해봤다. 죽은 노인이 그야말로 짐승같은 인간이기에.
죽어 마땅하며 누가 왜 죽었는지 알아뭣하리 하는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전혀 생소한 이름들이 등장해 새로웠고,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름에 성을 쓰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
성이 없어도 사람이 추적 가능하다는 게 더 신기하다.) 익숙하지 않은 지명도 기억하기에는 꽤 어려웠으나, 이 책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한"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물론 어느 나라에 사는 여자이든, 강간이라는 것은 평생 잊을수 없는 치욕이 되는 건 당연하겠지만,주위 시선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 조치도 제대로 취하지도 못하고, 평생 자기만 아는 비밀로 간직하고 그렇게 낳은 자식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어머니-어린 딸의 죽음에 결국 목숨도 놓아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런 감정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 느끼기기보다는 진심으로 마음 쓰라리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비교적 여권신장으로는 동양쪽보다는 나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유럽에서도 이런 비합리적이고 여성비하적인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니 같은 여자로써 피가 끓어오르게된다.
우울하고 축 쳐져있는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 또한 이런 감정을 극도화시키며,
비참하게 보이기마저 하는 형사 에를렌두르의 가정사와 일상 역시 마음을 짠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인구 30만의 단일 민족이며 타 민족과의 결합도 그닥 없기 때문에 유전학 연구의 산 실험실같다는 아이슬란드. 아마 다른 나라였다면 이런 추리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속의 댄서>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장마비처럼 무겁고 축축하다. 음침할 정도로 슬프다.
지금까지 읽어본 <블랙캣 시리즈>중에서는 가장 내 취향과 잘 맞았던 소설이었다.
아흑...가슴 아파라....
 
p.s.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은 좀 촌스럽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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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7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캣 시리즈는 레이븐 블랙이란 책밖에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요즘의 추리소설과는 그 분위기가 많은 차이가 나지만 독특한 맛이 있더라고요. 저주받은 피에서도 그런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궁금증이 커지는 군요.ㅎㅎ

Apple 2007-08-07 14:23   좋아요 0 | URL
둘다 재밌는데, 저는 이 책이 더 재밌더군요..^^꼭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