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유희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읽을 책이 많아서 쌓여있는 책을 바라보며 한참 고민하다가 마신유희를 딱 펼쳤더니,
전작 "점성술 살인사건"과 너무 다른 분위기에 왠지 모르게 읽기 싫어져서 잠시 밀쳐둔 것이-
지난달의 일.
결국 몇일전 다시 펴보았는데, 아아!!! 왜 이걸 이제 읽었지?!!!!하면서 후회했다.
그래. <점성술 살인사건>과는 확실히 다른 작품이다.
그야 그럴수 밖에.
<점성술 살인사건>이 1981년에 세상에 등장해서 그 사이에 미타라이 시리즈가 굉장히 많이 나왔으니
첫 시리즈부터 20년이나 지난 2002년에 등장한 <마신유희>가 다를수 밖에.
트릭을 이용한 토막연쇄살인이라는 점은 동일하나, 어쩐지 작품분위기가 거의 정반대일정도로 다르다.
<점성술 살인사건>은 아무리 여자들이 토막나서 잘려나가더라도 퀴즈 풀이같은 아기자기함이 있었던데 비해,
<마신유희>는 그야말로 박력이 넘친다. 엄청나게 음산하고 우울하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마신유희>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헨리 다거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가난하고 조용하고 고독하게 청소부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죽었고,
집정리를 하러 그의 방에 들어선 집주인은 그의 집에 숨겨진 놀라운 그림들과 글을 찾아낸다.
그리고, 오려붙이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헨리다거 혼자만의 예술품 <비현실의 왕국에서>는
결국 그가 죽고 나서야 빛을 바라고, 헨리 다거는 가장 유명한 아웃사이더 아트 화가중의 하나가 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억의 화가' 로드니 라힘을 보며 헨리 다거를 떠올리는 것은 나뿐일까.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모자란 사람, 측두엽 간질증세와 기묘한 정신병,
그저 그런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나 볶으며 근근히 살아가고,
그마저도 정신병이 재발하면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는 이상하지만 소외되어있는 유대인 로드리 라힘.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깡그리 없어져 버렸는데, 마음속에서 알수없는 충동이 그를 조종하기 시작한다.
한번도 그림을 그려본적 없는 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장면, 어떤 순간들을 그리지 않고는 못배기게 된 것이다.
발작적인 드로잉-스스로 "캐논"이라 부르는 로드리 라힘만의 그림속의 세계.
그 그림은 그에게 화가의 칭호를 붙여주고, 그는 화가로 대성하게 된다.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발작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캐논'은 사실 티모시라는 스코트랜드의 마을이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티모시에서는 알수 없는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60대 여성들이 말할수 없이 거대하고 힘센 누군가 손으로 찢어놓 듯 사지가 갈기갈기 찢긴 채 발견이 되고,
'기억의 화가' 로드리 라힘의 광기와 분노 어린 수기가 교차되 듯 보여진다.
로드리 라힘이 신봉하는 구약성서속의 모세와 야훼(여호와)의 전설-
힘없고 평범한 모세에게 나타나 이집트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하라는 야훼.
이스라엘인들을 군림하며 학대하는 이집트인들의 사지를 잡아뜯는 흉폭하고 강력한 신 야훼.
피속의 붉은 마신.
유대인들은 때때로 복수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인들은 빼앗기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로드리 라힘의 위험한 정신세계와 그의 기억속의 마을 티모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살인 자체에 트릭이 있었던 <점성술 살인사건>과 달리, <마신유희>는 텍스트에서만 허용되는 트릭을 가진 소설이다.
로드리 라힘의 위험한 수기에서 나타나는 심리묘사는 섬뜩하기 그지 없으며,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음산하다.
이 알수없는 사건과 독자가 범인으로 확정지어가는 용의자-
후반부에 나타나는 꽉 짜여진 트릭에 또 한번 시마다 소지에게 놀라게 되는 소설이었다.
(다 읽고나니 책 제목이 스포일러라는 생각도...^^)
 
여기서 잠깐! 그나저나, 이 소설 일본 소설 아냐? 미타라이가 탐정 아냐?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미타라이가 나오는 일본소설이기는 하나, 배경이 스코트랜드로 되어있고 사람들도 모두 스코트랜드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는데, 시리즈가 20년이 넘게 이어져 오면서 주인공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점성술 탐정이었던 미타라이가 2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다국어를 원어민처럼 말할수 있고,
낭비다싶을 정도로 많은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여자들에게 인기는 많으나 막상 여성혐오자이며,
비행기 운전도 할줄 아는 IQ 300의 슈퍼맨이 되어버린 것이다!!!
소설 외적으로 실망한 점은 이런 지나치게 인위적인 탐정의 설정이었다.
나는 조금은 멍청하고 게으른 탐정이 좋더라.
사건을 해결하는데 이렇게까지 머리가 좋을 필요는 없다. 왜냐면 이건 소설이니까.
 
IQ 300에 못하는 것 없는 울트라슈퍼맨 미타라이가 그냥 박학다식한 열혈독서가 교고쿠도와
그다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드는건 또 왜인가.(알고보면 교고쿠도도 IQ 300일지도.)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엉뚱하고 게으른 미타라이의 성격도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바뀌어있어서,
이렇게 공격적이고 냉정한 미타라이가 너무나 어색했다.
아아, 귀여운 미타라이를 돌려다오!!!!!
 
어쨌거나 막판에 소설 후반부에 드러나는 인위적인 미타라이의 프로필이 어색했던 점 말고는,
시간을 완전히 잊을 정도로 몰입해서 봤던 책으로 정말 몹시 재밌었다.
7월에는 어쩐지 너무 바빠져서 체력이 딸려서인지 시간나는대로 체력을 보충할수 밖에 없어서인지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없는데, 그럼에도 이번달에 읽은 책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재밌었다.
독서가 늘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소설을 읽으며 즐긴다기보다는 다 읽는게 목표가 될 때도 있는데,(소설이 지루할 때 특히 그렇다.)
지나고 나면 그런 독서는 항상 후회가 든다. 심지어는 스토리도 금방 잊어버리니까-.
독서란 즐거운 것이다. 트릭은 이렇게 즐거운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자, 이제 또 무엇을 읽어볼까나?
 
p.s 그나저나 그렇다면 <마신유희>쯤 와서 미타라이의 나이는 대체 몇....?=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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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7-28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역시 탐정이 맘에 안 들었어요. 그런의미에서 이 책보다는 <점성술 살인사건>에 손 들어 주고 싶어요.

시마다 소지는 사람 몸 해체하는걸 좋아하는 걸까요? 아님, 우연찮게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들만 그런걸까요?

Apple 2007-07-28 06: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것도 여자들 해체해놓는걸 특히 즐기는듯..^^;
확실히 미타라이는 점성술에서 더 귀여웠어요. 이렇게 차갑고 똑부러진 탐정이라니...
갭이 너무 커서 어색한 기분이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