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아사다 지로의 책은 "사고루 기담"을 처음으로 하나씩 생각나는대로 읽고 있다.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는 것같지도 않고, 묘사가 엄청나게 훌륭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기심을 자극할수 밖에 없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 찢어지게 슬프거나, 보고나면 행복해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읽게되는 이유는 아마도 아사다 지로의 이야기들에는 인간냄새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특별할 것도, 아주 시시할 것도 없는,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
"장미 도둑"에서 아사다 지로가 건내주는 이야기들은 그런 느낌의 이야기들이다.
 
아무리 긍정적이고 해맑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상처로 인해 내면이 일그러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야망을 위해 인간성을 버리기도 한다.
세상의 어떤 사람은 살기 위해 자존심을 팔아넘기고,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질투해 추문을 옮기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냉담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심하다.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인데, 겉으 로 보기에는 다 비슷한 사람들인데, 사람은 사실 모두가 다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남들이 알수 없는 것처럼, 남이 살아온 인생을 내가 완전히 알수도 없다.
 
아사다지로의 "장미 도둑"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은 모두 하나씩 엇나간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인간적이다. 추한 면 역시 미워할수만은 없게 만든다.
인간의 추한 면이나 삐뚤어진 부분을 묘사함에 있어서, 인간에게 혐오감이 드는 소설들도 많지만,
아사다 지로만의 특별함은 이런 못생긴 내면마저도 정감넘치게 그린다는 점이 아닐까.
저마다 짊어지는 삶의 무게나 절망을 그리면서도 슬프지가 않다.
부자가 나와도, 가난한 사람이 나와도, 이 사람들은 모두가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정리해고 당한 남자가 퇴색한 온천지에서 나이든 스트리퍼를 만나 동반자살하기로 하는 <수국꽃 정사>.
쉴세 없이 사람들 사이를 나도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죽은 남자의 소문과 함께
저마다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나락>,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고통없는 죽음을 맞아가는 <죽음 비용>,
술집에 다니는 엄마, 엄마를 좋아하는 12살 아래의 연하의 남자, 그리고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는 여자아이의
외로움과 상처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 <히나마츠리>,
배타고 나간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상류층 어른들의 권태와 일탈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천진난만하게 풀어나가는 표제작 <장미 도둑>,
가장 짧지만, 가장 유쾌한 <가인>까지,
이 소설에는 아사다 지로의 사람 냄새 가득한 수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가슴 절절한 감동은 없다. 그렇다고 요절복통 코미디도 없다.
똑같은 단어이지만, '인간'이라는 차가운 말보다는 '사람'이라는 따뜻한 말을 붙여주고 싶은 사람들.
이제는 퇴색해버린 많은 것들에 대한 향수.
강렬한 양념 없이도, 충분히 담백하고 맛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이런 밋밋해보일지도 모르는 인간과 삶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고 해도,
조금도 지루할 것 같지 않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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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11-2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산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안 읽고 있답니다-_-
얼른 읽어야 할텐데....

Apple 2007-11-2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고 좋아요.^^ 겨울에 읽으면 더 좋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