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퇴근 전에 막판 댓글을 달은 곳은 하이드님의 서재 `야래향'관련 페이퍼 였죠.
야래향을 생각하니 등려군이 생각났고 등려군이 생각나니 `월량대표아적심'이라는 노래
가 생각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 곡을 생각하니 첨밀밀과 화기소림이 생각났고 화기소림이
생각나다 보니 주윤발이 생각났고 그러다 보니 극장에서 주윤발을 직접 봤던 기억이 나
는 것입니다. 결국엔 극장을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는군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었죠. 공중파를 통해 했던 토요명화, 명화극장, 주말의 명화
는 아버지께 엄청 혼나면서도 몰래몰래 빠지지 않고 꼭 봤으며 주말이 지난 후엔 학교에
가서 침을 튀기면서 어제봤던 영화에 관해서 떠들었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내가 어설픈 헐리우드 키드 정도로 보이진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요즘은 거의 안보
이지만 길거리 벽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던 영화 포스터에 설레이는 맘을 가졌고 특히
미성년자 입장불가의 다소 원색적인 영화 포스터를 안보는 척 하면서 샅샅히 눈에 바르고
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유년시절 극성스런 영화탐식은 당시 대한극장에서 했던 `마지막 황제'의 조조관람에서 절
정에 다다르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아침 조조 1회 선착순 100명에게 영화 팜플렛을 공짜로
준다는 선전에 독기를 품고 11시 첫상영 영화시작 3시간전부터 극장앞에서 줄을 서서 기
어코 받아낸 팜플렛을 가슴에 꼭 안고 70미리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기가막힌 영상을
헤벌레 보고 결국, 다음주 일주일 내내 그 추운 날 벌벌떨면서 기다린 선물로 지독한 독감
에 시달렸었던 추억도 있었군요.
지금은 없어진 금성극장(숙대입구쪽)에서 `분노의 역류'를 보면서 입을 틀어 막고 꺼이꺼이
울었던 일도 있었고, 20대 젊은 시절 방황의 끝자락에서 혼자 처량하게 대한극장에서 봤던
`그랑블루'의 매력에 빠져 파란색에 집착했었답니다..
명보극장에서 감독재편집판으로 본 `지옥의 묵시록' 감상을 대기하면서 전회를 보고 나온 관
객들의 이상야릇한 표정을 보면서 `왜 저런 표정을 짓지..?' 했지만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와 그들과 똑같은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던 일도 있었고, 영등포의 연흥극장에서 상영한 영
웅본색2편에 주윤발이 직접 온다고 하길래 달려갔다가 줄서 있는 사람 중에 그 더운 여름날
바바리코트에 썬글라스를 끼고 온 사람을 보고 뒤에서 실컷 비웃어 줬던 일...
고등학교때 천여유혼의 왕조현의 초절정 인기로 극장가서 사진찍어 학교에서 장사했던 일...
끔찍한 공포영화를 보면서 극장에서 낄낄거리면서 웃다가 주변에 앉은 사람들에게 미친놈취급
당했던 일..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유별나게 달려온 어설픈 헐리우드 혹은 빌리우드 혹은 충무로 키드가
아니였나 생각되어 집니다. 물론 지금은 마님에 마님에 의한 마님을 위한 영화의 선택이 우선이
되었고 그나마도 주니어를 키우다 보니 여의치 않은게 현실이 되버린 느낌이네요.
옛날처럼 TV에서 하는 영화에 열광을 하지 않으며 심드렁해지는 걸 보면 아마 그때 이극장 저
극장으로 달리고 달렸던 내 열정은 사화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지네요. 그래도 가끔 TV에서
하는 옛날 영화를 포착하고 흥분을 하고 몰입을 하는 걸 보면 사화산 정도는 아니고 휴화산 정도
라고 애써 위로는 해보지만 말입니다..^^
뱀꼬리 :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오래전에 돌아가신 영화평론가 `정영일'씨
언제나 검은 뿔테안경을 쓰시고 나와서 중얼중얼 영화평론을 하시고 정말 좋은 영화는
마지막에 `꼭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라는 멘트를 남기시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