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지어 달라 의뢰 하러 온 손님(건축주)에게 건축가가 대뜸 던졌던 질문이었다. 이 짧지만 심오한 질문에 건축주는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결국 하루정도 고민하며 자기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에게 전달한 후 자신의 집을 설계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사실 이 질문 하나가 처음이지만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난 책을 안 읽고 그들(건축가와 건축주)이 등장했던 짧은 다큐를 봤을 뿐이지만, 건축가가 던진 화두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계획과 설계 시공으로 마무리되는 건축물을 생성하는 과정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가가 던지는 이러한 질문은 사실 건축주의 입장으로써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내 돈으로 내 집을 짓겠다는데 다짜고짜 학교 선생님이 학생에게 던질 법한 질문을 제시한 건축가에게 어쩌면 속내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건축주들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세상에 내 집 지어줄 사람이 당신 뿐은 아니다. 라며 돌아서던가. 아니면 이 양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왜 던졌을까 라고 고민하고 답을 내기 위해 생각을 하게 되거나.
몇 차례 언급했었지만 내가 밥 벌어 먹고 있는 직종은 서비스업에 분류된다. 이런 분류방법 때문일까 사실 건축이 “예술”이며 시대의 철학이라고 하기엔 일부 국한된 범위에 속한다. 지금도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건축물의 생성과정에서 “예술”은 가장 먼저 제외시키는 항목이기도 하다. 서비스업의 특징상 클라이언트(고객, 건축주)의 의견을 십분 반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한정된 자본을 바탕으로 최고의 재화가치를 찾아주다 보니 이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우리같이 남의 집이나 건물을 설계해주며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책에 나온 건축주 같은 사람은 참 고마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미술로 말하면 캔버스(대지)를 제공하고 연필과 물감까지 제공하며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을 첨부시켜 건축가가 추구하는 속칭 “예술”을 해줄 수 있는 자유의지를 인정해주는 것이니까.
나 역시 다시 시작한 이 직종에서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요구조건도 다양하다. 작은 주택에서부터 꽤 규모가 큰 제약회사의 생산시설까지 건물의 용도와 목적에 맞게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요구하는 항목을 십분 반영해줘야만 한다. 무림고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이일훈씨같은 고강한 내공을 소유한 고수는 절대 아니다. 감히 건축주에게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같은 위험천만한 질문을 날릴 정도로 자신감이나 성과는 없다고 봐야 하니까. 다분히 현실타협적인 방법이지만 난 요즘 건축주들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며 그들의 의견을 내가 속한 위치에서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아내주고 있다.
얼마 전에 만났던 모 학교 관계자의 증축관련 미팅에서 나온 “최대한 예쁘고 멋지게.”이런 요구만큼은 정말 난감하다. 나에게 던져진 우문에 현답을 내줘야 하는 입장에서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다. 언제쯤 난 그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와 같은 위험천만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0채만 설계해보고 한번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