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차 병원에 들렀다. 다시 말해 그동안 나름 열심히 관리해온 몸뚱아리 검사를 받기 위해.
여전히 그 병원은 문전성시.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예약환자의 명예를 부여받은 나조차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대부분 처음 오시는 분들이고 그분들의 코스는 진료-검사-수술날짜예약 수순을 밟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루하게 기다리다 꾀꼬리 같은 간호사 언니가 내 이름을 호명하신다.
‘겨울잠 안자고 병원 오신 곰님’
오른손 번쩍 들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의사 쌤과 간단한 인사 후 그동안 내준 숙제검사를 받았다. 결론은 참 잘했어요. 도장 쾅쾅쾅. 그리하여 겸사겸사 오늘을 기념하여 안식일을 가졌다.
마침 마님은 레슨 때문에 저 멀리 경기도로 날아가서 늦게 돌아오신다고 하니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넘흐넘흐 먹고 싶었지만 엄격한 통제와 감시 때문에 섭취하지 못했던 동네 부근 죽이는 칼국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조그마한 가게에 의자 없이 그냥 엉덩이 지지며 먹는 식당이었고 맛은 꽤 유명한지라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 기다리기 일쑤였던 집. 퇴근 후 직원들 끌고 후다다닥 달려갔기에 몇 개 남지 않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앉자마자 주문은 간결하게 시켰다. 해물 칼국수 2개에다 보쌈, 그리고 맥주와 소주 한 병이요!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아 적으시더니만 바로 찬과 함께 보리밥 한주먹을 내오신다. 이 집은 칼국수를 시키면 그 전에 보리밥을 먼저 준다. 이걸 고추장과 참기름을 적당히 치고 비벼먹으면 제법 맛깔 난다. 칼국수 두 개만 시켰기에 달랑 두 공기만 주셨지만, 한 그릇 더 주세요. 라고 요구하니 바로 주신다. 그렇게 비비며 공복감을 달래고 있자니 기다렸던 칼국수와 보쌈이 나온다.
요거이...보쌈이고~~~
요거이...해물 칼국수~~~~
일단 칼국수 전문점이기에 보쌈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맛은 있다. 더불어 이 집은 모든 김치를 직접 담근다. 보쌈김치도 당근 손토메틱....가게 앞엔 언제나 산더미처럼 배추와 무가 쌓여있으니까. 그렇게 나를 비롯한 직원 2명은 칼국수와 보쌈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음 그런데....확실히 양이 줄었다. 더불어 먹는 속도도 줄었다. 들어가는 알코올이라고는 맥주 딱 한잔인데도 금방 배가 차오른다. 그래도 칼국수 안에 들어간 해물만큼은 (바지락, 새우, 미더덕, 굴, 홍합)은 남기지 않고 건져 먹는다. 이렇게 저렇게 저녁을 해결하고 조금 거리감이 있는 조그마한 카페로 향했다.
우리 동네의 요즘 특징은 원룸에 사는 나 홀로 직딩들의 거주가 늘어나서 그런지 소규모 카페가 제법 많이 생겼다. 나름 맛있는 커피를 제법 싼 가격에 제공해주고 동네 사람들 상대로 장사하다 보니 꽤 친절하기도 하다.
오늘은 카페 제목처럼 달랑 테이플 10개만 있는 곳으로 가 핸드드립 커피를 시켜먹는 만용을 부려봤다. 젊은 청년 두 명중 하나가 다가와 주문을 받으며 핸드드립에 쓰일 원두에 대한 맛과 특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이렇게 저렇게 주문을 하고 각기 다른 제법 예쁘장한 커피 잔에 서로 다른 향과 맛을 보여주는 커피 3 잔이 따라진다.
직원들과 나름 심각하고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자리에서 뜰 때 아까 그 청년이 다시 다가와 커피 맛이 어떠셨냐고 물어 본다. 좀 진하다. 란 느낌을 사무실 여직원이 말하니. 다음에 오실 땐 조금 더 희석해서 드리겠다고 정중하게 얘기한다. 그리고 카페를 나와 밖에서 가게를 다시 보니 이런 글이 쓰여 있더라는...
‘10 table 커피는 유기농 공정무역 커피로 최고의 원두만을 사용합니다.’
집에서 약간 거리감이 있지만 운동핑계로 마님과 함께 가끔 커피나 홀짝거리러 종종 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