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일이었지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떤 사건이 있다. 아마도 주말이었고 장을 보러 나왔으니까 마님은 옆에 계셨을 것이고 주니어를 카트에 실을 정도의 덩치였으니까 지금보단 주니어가 어렸을 때였고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던 시간이었으니까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마트에서 찬거리, 저녁거리를 장보고 있을 때 들리던 엄청난 고성. 반품 혹은 환불을 받는 공간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얼굴을 삼국지 관운장의 얼굴색마냥 대추 색으로 붉게 물들이고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한 손엔 집에서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가지가 들려 있었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환불문제로 시비가 붙은 듯 했다. 하도 크게 떠들기에 듣고 싶지 않아도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은 내용을 다 알아버리게 되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린 이후에 환불을 받으려 물품을 가져왔고 이미 그 옷은 상품으로써 값어치를 상실한 듯 했다. 세탁도 한 차례 하고 옷 한 쪽은 조금 심하게 훼손이 된 상태였나 보다. 이런 상태로는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마트 직원과의 실랑이가 고성의 원인이었다. 결국 손을 든 건 마트 쪽이었다. 조금 높은 사람이 나와 그 아주머니를 살살 달래 소기의 목적을 달성시켜 주었고 보부도 당당하게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그 경험이 미숙했을지도 모를 마트 직원에게 꽤나 끔찍한 말을 퍼붓고 본인의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침울한 표정의 그 마트직원을 동료들은 조용히 위로했고 일을 무마시킨 상관으로 보이는 그 사람도 조심스럽게 그 직원을 다독여주는 모습을 잠깐 연출하였다.

아마도 이런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꽤나 많을 것 같다.(요즘은 그 정도가 심해 제사 끝난 후 꼭지와 밑동을 자른 수박을 들고 와 상했다고 반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흔히 ‘손님은 왕’ 이라는 서비스 업계의 기본모토가 본의 아니게 월권이 되는 모습이라고 보고 싶다. 자신들의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왕처럼 대접하겠다. 란 이 뜻이 일부 몰지각한 왕들 덕분에 심하게 훼손되는 기분이다. 그런데 왕도 왕 나름이 아니겠는가.

그 옛날 왕들은 왕이라는 권좌에 오르기 위해 뼈를 깎는 수행을 쌓아야만 했을 것이다. 기본적 격식과 예절, 더불어 교양까지. 이런 형식적인 것뿐이었을까. 한 나라의 국민들 다스리는 위치로써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더불어 막중한 책임과 의무까지 그들이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왕이라는 자리가 그리 편하기만 한 자리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왕들은 과거 역사 속의 왕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의무 따윈 존재하지 않고 권리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쉽게도 보여준다. 아마도 앞에서 말한 관운장의 얼굴색을 보이며 사자후를 날렸던 그 아주머니 역시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오프에서 뿐만이 아닌 온라인에서도 빈번하게 마주친다.
소비자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거나, 단골을 운운하며 왜 날 대접해주지 않느냐는 하소연, 다른 사람의 피해는 외면하다가 자신의 피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방방곡곡 이장님 마이크 마냥 소문내기 바쁜 상황연출. 자신의 정당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타인의 비방. (여기에 자화자찬은 필수요소다.)

이것 하나만큼은 말하고 싶다. 손님은 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도 왕 나름이다. 우리는 호전적인 정복욕구가 가득한 알렉산더일지도 모르고, 학구적이며 지적인 세종대왕일지도 모른다. 또는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폭격에 쑥대밭이 되 버린 런던을 직접 손발을 써가며 국민들과 재건의 모습을 보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반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폭군의 길을 걸은 연산군, 혹은 재미삼아 로마를 불바다로 만든 네로황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왕이 되고 싶을까. 설마 연산군이나 네로 같은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왕이 하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왕처럼 대접받고 싶은가? 그럼 먼저 왕으로써 지켜야할 예의와 배려부터 익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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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10-12-2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물건 샀다가 환불이나 교환 받은 경험이 몇번 있는데요. 어느 날 엄마가 그러시더라구요. 정도껏 해라. 습관 될라. 분명 그 정도는 아닌데 그 후로 자중하고 있어요. 엊그제는 죠리퐁에서 손톱만한 돌이 나왔는데도 참았습니다. 잘한 걸까요? -_-

Mephistopheles 2010-12-27 14:22   좋아요 0 | URL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야 환불 교환은 당연하거죠..단지 방법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요. 더더군다나 먹는 음식에서 손톱만한 돌이.....이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셔야 할 사항이 아닐까요..^^

레와 2010-12-2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페이퍼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나 또한 '소비자'라는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았나 돌아 봅니다.
:)

Mephistopheles 2010-12-27 17:58   좋아요 0 | URL
음..그게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소비자의 권력. 일종의 기본적인 상식과 예절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보고 싶은데..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제법 많더군요.

카스피 2010-12-27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건 아줌마가 잘못했네요.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당한 환불 규정이 있음에도 환불이나 교환을 거부하는 업체들이 더 큰 문제지요.그러다보니 소비자 역시 목소리가 커질수 밖에 없고 업체도 목소리 큰 소비자에게만 환불을 하니 소비자만 나쁘다고 탓할 수만을 없을 것 같습니다.업체 스스로가 그런 소비자를 만드니까요^^

Mephistopheles 2010-12-27 18:06   좋아요 0 | URL
전 업체가 더 큰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이런 불량업체에 버금가는 안하무인, 고압적 소비자 역시 그 업체와 다를 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선택권이 존재합니다. 불량업체 이용 않하면 그만입니다. 그 업체가 과연 지속적인 이윤을 남길 수 있을만큼 요즘 소비자들은 물렁하지도 않고요.

울보 2010-12-27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 그래요,
언제나 우리는 손님은 왕이다를 외쳐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점도 있어요, 손님은 왕이다 보다 사장은왕이다도요,,ㅎㅎㅎ
제가 그런곳 몇곳을 알아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고쳐지지 않는곳,
아무튼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예절은 꼭 지키고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지요
요즘 처럼 인테넷쇼핑이나 마트문화가 발전하면서 저런 아줌마 아저씨들은 더 늘어나는것 같긴해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48   좋아요 0 | URL
속칭 진상손님이..이젠 아줌마 아저씨로 국한되는 것 같진 않아요. 다양한 연령대가 분포되어 있더라고요..^^

혜덕화 2010-12-2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자 배달원의 죽음이 안타까웠습니다.
한 생명이 식어가도록 만든, 뜨거운 피자 배달이 오늘 우리의 왜곡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손님도, 주인도, 종업원도 모두 왕이 아니지요.
우리는 그냥 모두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저런 말이 우리 사회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돈이 왕이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나도 너도, 그도 모두 한 가정에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저런 말을 할 수가 없지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49   좋아요 0 | URL
아...저도 그 대학 졸업반인 피자 배달원의 죽음...참 안타깝더군요.
제 페이퍼가 우문이면 혜덕화님의 댓글이 현답 같습니다. 상거례 자체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인데 한쪽 시선이 너무 높진 않나 싶습니다 평행선이 가장 이상적일것 같아요.

2010-12-27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0-12-2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환, 환불을 당연한 권리처럼 행사하기 전에 신중한 구매를 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도 들어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51   좋아요 0 | URL
최근에 읽은 책 '노임펙트맨'이 떠올라요. 우린 너무 많은 소비를 지향하며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쓰레기를 너무 많이 배출하는 건 아닌가...라는..^^

순오기 2010-12-2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딱 한 사람이 떠오르는군요.^^
왕처럼 대접받고 싶어하면서 전혀 왕으로서의 예의와 배려는 없는...

Mephistopheles 2010-12-28 10:52   좋아요 0 | URL
혹시...그게...전가요..?? 흑흑..반성하고 있습니다..

순오기 2010-12-30 14:40   좋아요 0 | URL
설마~ 메피님이겠어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제가 떠올린 사람과 같은 분을 생각하며 쓴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Mephistopheles 2010-12-31 21:41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전 누굴 대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불특정 다수라면 모를까..? ^^

2010-12-28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0-12-2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런 마음 가진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살다보면 한번쯤 남의 입장에 서보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글은 알라딘 메인, 서재 메인에도 한동안 떠있으면 좋겠네요.

Mephistopheles 2010-12-28 15:52   좋아요 0 | URL
이런 잡문을 남긴 저는 오죽하겠습니까..다 쓰고 나니 여태까지 택배 늦게 온다고 발광(?) 떨었던 몇몇 사건을 생각하며 좀 창피해지더군요..^^

2011-01-05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