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다른 사무실 나가 고생하며 일했고 그 여파가 12월 초까지 이어졌었다. 그리고 잠시 한가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야근은 없었고 마감시간에 쫒기지 않으며 여유롭게 뒷정리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12월 23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모 공기업에서 발주하는 어떤 프로젝트가 1월 달 중순부터 본격적 스타트를 시작한다던 계획이 급변경되버렸다. 그런데 기본적인 도면을 풀셋으로 해달라는 시간이 참 기가 막히다. 12월 24일까지 해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모든 결과 치를 내놓으라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함에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을 했더니만, 잠시 후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많이 양보해서 26일까지 해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24일, 25일 꼬박 밤을 새서 월요일 날 결과물을 달라는 소리..허허허...
여러 가지 상황이 유추되고 있다. 여러 가정 중에 가장 확증이 가는 가설은 이러하다. 사실 우리 업계는 올해 꽤나 힘들었다. 민간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진 않았고 그나마 있는 일거리라고는 공공사업이 전부였던지라 그 많은 동종업계들이 승냥이 무리마냥 덤벼들기 시작했다. 고기는 줄었는데 입은 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경쟁에 밀린 업체는 도태 돼 버렸고 그나마 배 두들기며 포식했던 업체들 역시 허리띠 꽉 졸라매는 상황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콩고물...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떡값을 돌릴 수 있는 여유자금 확보가 어려웠을 것이다.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떡값 달라는 일종의 제스처일 가능성이 제법 높다는 소리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 그래도 나랏돈으로 월급 받는 양반들이...)
가정을 세워보고 유추를 해본들 어쩔 도리가 없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눈치껏 일해주고 어느 정도 분량을 채워서 보내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계약관계 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선 뱀파이어에게 열심히 피 빨리는 존재일 뿐이니까.
그냥 한 가지 바라고 싶은 것은 24일 새벽에 발 뻗고 자빠져 자고 있을 그 분들이 스크루지 영감마냥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차례대로 대면하길 바랄 뿐이다. 그것도 고풍스럽고 온순한 버전이 아닌 스팩타클 3D 하드고어 스플래터 호러무비로 말이다. 회개하고 착한 스크루지 영감이 된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는 기대하지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