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투수의 파워를 가늠할 수 있는 삼진아웃은 사법부 쪽으로 오면 무섭게 돌변한다. 동일한 범죄 혹은 그에 준하는 범죄를 3차례 범했을 때 사회와 격리가 된다. 이런 삼진아웃이라는 내용이나 제도가 우리 사무실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얼마 전 알게 되었다.
낙하산 모님이 짐을 쌌다. 그 마지막 날, 전날 아무런 느낌도 없이 평소모습 그대로 보여주시던 분이 다음날 아침 시침이 11을 넘어가 12로 근접하고 있을 때에도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늦으시거나 안나오는 날에도 사무실에 통보를 않하시는 분이다 보니 점심식사를 하며 궁금증에 실장님께 물어보니 돌아온 답변은 ‘오늘부터 안 나오신다.’ 이었다.
어쩌다가라는 물음표는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과정은 이러했다고 한다. 소장마마가 그 전날 저녁때 얼굴을 보며 해고 통보를 한 것이 아닌 전화로 통보를 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소장마마의 해고통보는 참 냉정하고 보기 안 좋을 수 있었다. 섹스 엔 시티에서 캐리가 남자에게 냉장고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으로 이별 통보를 받은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간의 사정을 보면 이런 행위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 분이 우리 사무실에 몸담고 있었던 시간은 4년이 조금 모자란다. 시작부터 정식적인 방식이 아닌 편법을 통한 입사였고,(컴퓨터 설계 좀 배운다고 하신 분이 눌러앉아 버렸다.) 정식으로 직원이 된 후 나이에 걸맞게 직책을 하나 배당받으셨는데 이때부터 뭔가 단단히 오해가 생기기 시작했었나 보다. 단지 나이 때문에 받은 직책이기에 그에 따른 무게감은 가벼울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행동은 직책의 권리는 십분 누리면서 의무는 외면하는 형태를 취하셨다. 입사 후 점심과 저녁을 꼬박꼬박 사무실 자금으로 해결하며 야근은 하지 않는, 더불어 일정 상 바쁠 때 토요일엔 결코 출근을 하지 않는 모습이 소장마마에게 목격당하고 아마도 한 번의 지적을 당한 듯 했다. 그 후 정도껏 눈치껏 보완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여전히 그 본바탕만은 변하지 않았더랬다.
더불어 다른 직원들과 일적인 면으로 충돌이 제법 많았었다. 나를 비롯해 실장님, 더불어 젊은 직원들과 한 번씩 혹은 그 이상씩 꼭 충돌이 발생했었다. 고압적 모습, 고성과 우기기가 돌출되었다. 이런 모습들이 축척되며 결국 작년 말 술자리에서 소장마마는 단언을 했었다. ‘이제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다.’
결과는 소장님의 단언은 잠정 유보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소장마마는 그 분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말씀을 꺼내셨으나 그 분은 아이들이 대학 들어가고 대입 준비하는 애도 있다고 하며 애들 졸업 때까지만 좀 봐달라는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더불어 자기가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리 저리 유지되었던 그 분의 사무실 생활은 내가 파견근무 기간 동안 또 다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나 보다. 4명의 인원이 고스란히 외부로 빠져나간 상황에서 내부의 충원 없이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품었을 스트레스를 직원들에게 뿜었다고 한다. 외부 회의에 참가하라는 소장님의 부탁에 내가 왜 가냐? 로 응답하고 파견 나간 직원들까지 들먹이며 빨리 들어오지 않는다는 푸념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용케 피해갔던 PM(프로젝트 매니저)의 직책을 맡았던 프로젝트를 풍지박살 내시는 지경까지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규모가 작은 일이기에 두 명의 인원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결과론적으로 안 좋게 나온 뒷감당을 팀원에게 전가시키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아마도 소장마마의 생각은 이럴지도 모른다. 면전에서 해고통보를 할 경우 또다시 그 분은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내 사정 좀 봐 달라. 애가 어쩌고저쩌고 내가 노력할게…….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으셨을 것 같다. 냉정한 방법일진 모르겠지만 전화로 정리 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분은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았고 그 다음날 침을 챙기러 11시쯤 사무실에 나타나셨다. 한일자로 입을 꾹 닫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짐을 챙기시고 12시에 점심식사 하시고 오후 6시 즈음까지 자리에 앉아 넷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더니 직원들에게 한마디 없이 사라지셨다. 그 날 소장님은 출근하지 않으셨다.
약간의 걱정이 앞서지만 현재 상황까지 오게 된 연유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있기에 어설픈 동정이나 연민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음 날 소장님과 나눈 대화에서 더더욱 이런 감정이 사라지게 돼 버렸다.
어쩌다가 정리하신 거예요. 그것도 갑자기..??
그걸 몰라서 묻냐..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텐데..??
그래도 친구 분이신데.전화로 말하기에는 좀....??
말 마라.....나 보고 나쁜XX 란다....허허..
..........
그 X은 굶어 죽어봐야 정신 차릴 거야...
소장님...사람은 원래 쉽게 변하지 않잖아요..거의 안변한다고 봐야죠.
결국 어영부영 비정상적 루트를 통해 입사를 한 그 분의 사무실에서 최후는 이렇게 가장 안 좋은 모습만을 남긴 채 끝을 맺게 되었다. 화려한 학력 스펙과 박학다식한 지식이 있다 한들 단체에서 혹은 조직에서 융화가 되지 못하는 독불장군의 최후는 언제나 비참할 뿐이다. 그건 그분의 젊었을 적 별명 ‘람보’도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