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연아씨의 신들린 연기(난 이제 얘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 중압감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고점수를 갈아치는 모습에서 솔직히 소름 돋았다.)를 사무실 인터넷을 통해 보고 오후 예정으로 잡았던 삼성동에서 하는 전시회를 가기위해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북적거리는 전철을 타고 도착하여 이런 저런 절차를 거쳐 입장을 하게 되었다. 이번 주제는 친환경이라고 하니 뭔가 특별한 아이템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어찌 해가 바뀌어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더라.
여러 가지 건축자재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전시장은 사람도 제법 많았지만 일단 더럽게 넓었다. 횡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움직일 것인가 종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움직일 것인가 궁리하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횡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바닥재, 천장재, 타일부터 각종 외장재, 더불어 종류가 다양한 창호부터 시작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모든 자재들이 저마다 우리 것이 최고요! 를 주장하는 자리이니만큼 열기만큼은 후끈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날 가서 그런지 조금은 맥이 빠지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각 부스를 지키는 예쁘고 늘씬한 언니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 아쉬움은.......흠흠...
이렇게 저렇게 1층의 전시물의 절반을 보고 늙었다는 증거의 표본인지 운동부족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리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 중간쯤에 있는 휴게 공간에 잠시 걸터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오고가는 사람들이 커피나 음료를 들고 다니는데 컵에 새겨진 상표가 낯이 익어도 보통 익은 게 아니었다. 둘레둘레 살펴보니 맙소사 여기까지 스타벅스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저렴한 밥값보다 비싼 그 가격을 자랑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마르고 피곤해 커피나 한 잔 마시려다 식겁하고 식수대에 달려가 물로 목을 축였다.
이렇게 터벅터벅 걸어 다니며 명함 뿌리고 자료 받고 설명 듣고 1층을 거쳐 3층까지 공간을 차지한 대부분의 전시물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오후 5시가 되어 있었다. 고만고만한 늙다리 중년 4명은 극심한 체력소모와 탈진의 기미를 보이기에 어디 퍼질러 앉아 목이나 축이고 배나 채우자고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1차로 근처에 끝내주는 돼지고기 샤브샤브를 정종과 곁들여 퍼먹어 볼까 하다가 평소 10배가 넘는 걸음걸이를 한 관계로 전시장과 같은 건물에 있는 하우스 맥주 집으로 위치를 잡고 움직였다.
그런데 이 가게 시스템이 참 거시기하다. 오후 6시 전에 오셨기에 맥주는 일단 셀프, 그리고 안주류는 되는 거라고 소시지와 감자뿐이란다.(이것도 푸드코트마냥 셀프란다.) 다른 안주는 6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귀찮고 다리도 아프기에 그냥 자리 잡고 셀프 서비스로 하우스 맥주 2000CC와 쏘시지, 감자를 시켜 걸신들린 것처럼 처묵처묵 퍼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0CC를 금방 비우고 또 다른 종류의 하우스 맥주를 주문하고 나니 6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황급하게 서빙 보는 아저씨를 불러 이 집의 명물안주인 “와인치킨”을 부리나케 시켰다. (한정수량이고 늦게 시키면 금방 동이 나버리기 때문.)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이제 그 바닥을 보이는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깔짝거리고 있을 때, 보무당당하게 테이블 위에 자리를 잡은 우리들의 닭님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다가오셨다.
저 불덩어리 속에 닭이 존재한다는....
하지만 그 자태도 순간의 미를 자랑하며 근사한 불 쇼를 한 번 선보이시더니 두꺼운 장갑을 끼신 쉡님께서 손수 갈기갈기 해체하시기 시작한다. 이 닭의 근본이 궁금하여 얼마 전 모 프로에서 허당으로 통하는 L군이 맥주 캔을 쑤셔 넣고 닭을 조리하면 고기가 연하고 맛있다고 하는 그 요리를 언급하자, 우리의 쉡께서는 같은 원리지만 우린 와인을 쓰며 맥주 캔을 닭에 쓰는 방법은 맥주 캔 표면의 페인트의 나쁜 성분이 닭에 들러붙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정보를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고마운 정보에 월화드라마 파스타의 서유경 마냥 “예! 쉡! 쉡! 쉡!” 외쳐볼까 하다 주변에 지나치게 많은 안구들 덕분에 마음속으로만 외치는 걸로 만족했다.
일단 정체불명의 소스는 4가지 대충 맛을 보니 키위, 복분자, 머스터드, 그리고 정체불명의 또 다른 하나. 더불어 상큼한 오일드레싱으로 맛을 낸 샐러드 한 접시가 더불어 나온다. 가장 중요하다는 닭고기는......닭고기는... 그 육질이 참으로 끝내준다. 부드럽기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오븐에 장기간 사우나를 하셨기에 기름기는 쪽 빠져 있다. 퍽퍽하고 식감은 없고 단백질 덩어리기에 보디빌더 아저씨들이 즐겨 먹는다는 닭 가슴살마저도 쫀득하고 촉촉하니 말 다했다.
고기 한 점 소스를 쳐 발라 입에 넣고 맥주를 들이켜니 장시간 보행으로 인해 쑤셨던 무릎과 뻐근했던 허리는 감쪽같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이렇게 맥주를 퍼먹고 닭에 소시지에 감자튀김까지 뱃속에 집어넣고 집으로 귀가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에 또 들리게 된다면 이번엔 학센(독일식 족발)을 시켜먹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