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김밥에 비하면 두께는 2/3. 들어가 있는 재료라고는 시금치 몇 가닥과 노란 단무지, 옛날 분홍 쏘시지 뿐. 아마도 포장마차에서 이쑤시개로 찍어 먹었을 법한 꼬마김밥보다 더 부실한 내용물뿐인 그저 그런 김밥이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첫 만남에서 에게 게...이게 뭐야! 란 말이 절로 나왔었으니까.

그런데 이 김밥을 만드는 두 평이 조금 넘을 법한 가게 안에 들어가면 일단 분위기에 스리슬쩍 동화된다. 아주머니 두 분에 할머니 한분이 지키고 있는 이 김밥 집은 허름하고 볼품없다. 앉아서 김밥이라도 씹을 수 있는 테이블이라고 해봤자 가게 가운데 조그만 원탁에 의자 4개, 창가에 설치된 일자형 선반이 전부다. 하지만 주문과 동시에 분주해지는 아주머니들과 옆에서 부지런히 김밥을 말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처음 느낀 초라한 감정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김밥 주세요~ 란 주문을 내뱉으면 일단 아주머니 한 분이 제법 넓은 철판 앞에 자리를 잡으신다. 그리고 그 철판 옆에 산처럼 쌓여있는 계란 판에서 계란 2~3개를 뽑아내 달궈진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깨트린다.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달궈진 철판에 순식간에 익어가기 시작한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익어가는 계란을 넓게 넓게 철판 여기저기 골고루 분포시킨다. 곧이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볼륨감 없고 큰 기대감을 가지기 힘든 얇은 김밥 4개 정도를 철판 위에 나란히 올려놓으신다. 한 손엔 뒤집개와 한 손엔 수저를 들고 익어가는 계란 위에 알맞은 질서정연하게 김밥을 얹어 놓고 두 가지 재료가 골고루 섞이게 굴려주기 시작한다. 아직 채 익지 않은 계란흰자의 끈기를 이용해 김밥에 착착 계란이 들러붙기 시작한다. 불 조절을 하시며 검은색 외피를 가진 김밥은 순식간에 곱상한 노란색 계란 외피를 두르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김밥의 검은 김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할 때 마무리를 준비하신다.   



골고루 익히기 위함인지 철판 위 김밥 4줄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유격훈련장의 훈련병마냥 좌로, 우로 사정없이 기합을 당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계란 옷을 입은 김밥은 도마 위로 오른다.  

다른 아주머니는 자로 잰듯 한 입 들어가기 딱 좋은 크기로 김밥을 등분 내신다. 이윽고 꼼꼼히 포장용기에 김밥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용기를 꽉 채우기 시작한 김밥은 한 켠 구석자리의 조금은 넉넉한 공간을 남겨두고 포장이 완료된다. 이윽고 그 빈 공간에 새빨갛게 양념된 무짠지가 자리 잡는다. 이윽고 깨를 촘촘히 투하하며 그리 길지 않은 김밥의 완성을 마무리 한다. 




볼품없는 김밥은 계란 옷을 입고 색조대비를 이루는 붉은색 무짠지와 함께 제법 기막힌 맛을 선보인다. 포장이 아닌 좁다란 가계 한자리를 차지하고 바로 먹을 수 있다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밥에 무짠지를 살짝 올려 호호 불면서 먹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언제부턴가 입맛 없고 간단하게 뭔가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가게 된 김밥집이 되버렸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09-12-2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나보이는걸요

Mephistopheles 2009-12-29 14:53   좋아요 0 | URL
실제로도 맛있습니다. 특히 무짠지가 상승효과를 가져온다는...^^

보석 2009-12-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일단 시각적으로 성공.^^

Mephistopheles 2009-12-29 14:54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다요트중이신데 아마도 보석님 계신곳에서 그리 멀지 않을 껍니다.~~ 휘모리님 흔들어보세요~~

레와 2009-12-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김밥 비슷하게,
어머니가 냉장고에 넣어 둔 김밥에 계란옷을 입혀 구워주시던 생각이 나는군요.

그제 보고 왔는데, 또 엄마 보고 싶어요. 으흐~^^;;

Mephistopheles 2009-12-29 14:54   좋아요 0 | URL
엄마표 김밥은 일단 속재료 많이 들어가 너비가 넓잖아요. 근데 이 김밥은 김밥 자체로는 좀 부식한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웽스북스 2009-12-2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우리엄마는 냉장고 김밥에 계란옷 입혀서 구워주시는게 본인의 발명품이라 생각하고 계신다는 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메피님의 음식 포스팅. 흥! 간장 게장도 안사주신지 벌써 2년이 다되어가는데.....

Mephistopheles 2009-12-29 14:55   좋아요 0 | URL
2년 전 서해바다 앞에 꽂게알 뿌려놨으니까...이제 슬슬 수확해서 간장물 부어줘야 하는데..좀만 기둘려 보세요..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12-2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말에 자주 사다먹어욧!
이웃주민 메피님 ㅎㅎㅎ

Mephistopheles 2009-12-29 14:56   좋아요 0 | URL
어쩌다 저 김밥집에서 곰 한마리가 우억우억 거리며 김밥 먹고 있어도 너무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반갑게 어머 메피님 여기서 다 뵙네요..하시면 됩니다. (붉은 곰이나 흰곰에게 인사하지 말고요 검은 곰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29 16:01   좋아요 0 | URL
저도 다 먹을 수 있는데 아주머니가 '너무 많아 두줄이야'하면서 막 포장해 주신다는 ㅠ.ㅠ

Mephistopheles 2009-12-29 16:48   좋아요 0 | URL
설마 가격은 그대로 받고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9 16:51   좋아요 0 | URL
1인분이 두줄이잖아요 ^^

Mephistopheles 2009-12-29 21:19   좋아요 0 | URL
어랏..4줄 아니었나..(한번에 두 판 먹는 걸 억지로 희석시키는 중..삐질삐질)

L.SHIN 2009-12-2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된장이 내 머리통을 때려..ㅡ.,ㅡ
클릭하지 말았어야 해! 클릭하지 말았어야 해! 클릭하지 말았어야 해!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메피님 두고봐! 내일 내가 대왕김밥 사진을 올리고 말테니까!
정말 미워요! (버럭)

Mephistopheles 2009-12-29 21:36   좋아요 0 | URL
전 짧게 답글을 쓰겠습니다 엘신님..


"메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