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알라딘이 참 북적북적하다. 좋다면 좋은 거고 나쁘다면 나쁜 거겠다. 덕분에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는 계기를 가졌다. 내 주변에 비정규직은 얼마나 많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라는 아주아주 뻔하고 상투적인 살펴봄을 한 번 가져보았다.
결론은 “없다.” 로 나온다. 혹자는 오오...무슨 직종이기에 비정규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까 하지만서도 실상을 보면 에게~ 란 말이 절로 나온다. 비정규직은 없지만 정규직 전원이 비정규직처럼 일하는 직종이다. 하. 하. 하.
이쪽 업계가 워낙 월급 짜고 일은 많고 초과근무수당은 머나먼 유토피아 얘기다. 그러다 보니 해가 갈수록 이쪽 일 하는 사람들 인력이 쪼들린다. 입사와 동시에 정규직이 당연한 업종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명색이 전문직인데 라이선스 따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도 하겠지만, 글쎄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남산에서 다섯 번 돌 던지면 세 번은 우리 쪽 직종 라이선스 가진 사람이 맞는다고 그걸 가진 사람은 많지만 실적을 올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기 탓도 있겠지만 워낙에 박리다매적인 도급금액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그래도 나와 같은 동일업계에 비정규직은 분명 존재한다. 설계 쪽이 아닌 시공 쪽에 생각보다 많은 수의 비정규직이 존재한다.
옛날에 다니던 사무실 과장님 역시 라이선스를 취득한 후 고향으로 내려가 사무실 오픈하고 그래도 지역에서 목에 힘 좀 주고 살아 보려고 했지만 불경기가 닥쳐 그 꿈은 멀리 요단강을 건너가 버렸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건설회사에 현장감독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나이는 있고 시공 쪽 경력이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라이선스는 있고 실력이 있기에 그래도 도급순위 상위권에 랭크되는 철강으로 유명한 P건설사에 적을 두게 되었다.
가끔 술 한 잔 기울이며 수다를 떨며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조금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 당시 이 양반은 강동 쪽에 있는 K대 대단위 고층 주거 군을 시공하는 곳에서 일을 했는데 근무한지 1년이 넘도록 아직도 계약직에 묶여 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니까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다시 말해 비정규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비정규직만큼 월급이 반 토막이거나 복지혜택이 불평등하게 적용되거나 하진 않았나 보다. 월급은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을 맞춰줬고 기본적인 복지혜택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애시 당초 처음 그 곳에 소속되면서 구두로 이야기했던 정규직의 길은 아직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옥신각신 밀고 당기는 시간이 흐르다 그 프로젝트는 완공을 했고, 인천 송도 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그 분의 소식은 아직도 그 건설사의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수도 없이 정규직으로의 도약을 시도했지만 건설사측에선 별 시답지 않은 변명거릴 만들며 이리 회피 저리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우리사무실에 보름을 다니다 그만둔 20대 중반의 남자 신입사원이었다. 군 제대 후 대학 복학과 졸업을 거쳐 사회에 나와 설계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나 보다. 좌불안석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소리까지 나왔더랬다. 더불어 졸업동기들의 펌프질 역시 입사 보름 만에 퇴사라는 결정에 부채질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다.
그들이 던진 미끼는 다름 아닌 건설사 계약직 입사였다. 그때 친구들은 s건설사 계약직으로 현장에서 근무했었나 보다. 그들 말을 빌리자면 1년 정도 고생하면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달콤하고 황홀한 유혹이었다. 얼마나 근사한가. 1년만 현장에서 죽도록 고생하면 자기도 월드베스트를 표방하는 S그룹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 팔자 한방에 훅 간다고 보름 만에 업종 바꾸겠다고 사직서를 던져버렸다. 이유가 뭐냐는 이야기에 앞에 나열한 적성 운운, 정규직 운운을 내 앞에서 주절주절 나열한다. 맘을 이미 정했냐는 말에 이미 그쪽에 이력서까지 넣었다는 답변을 꺼낸다. 떠나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말리는 입장이다 보니 잘 가라 한마디 해주며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던져주었다.
‘1년 후 정규직이라. 정규직 되면 나도 좀 부탁한다.’
노래가사 마냥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3년간 이 현장 저 현장을 끌려 다니며 계약직으로 부림을 당하다 단종회사로 또 다시 업종을 바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마 지금도 보름 만에 사직서를 던진 그와 같이 사회 초년생들은 비슷한 조건에서 정규직의 미끼를 덥석 물며 파닥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내 주변 가까이 생각나는 비정규직 관련 인물은 위의 두 사람이 전부인 것 같다. 그래도 내 주변에서 한 발 더 나가 한 사람만 더 거쳐지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현실은 언급 안 해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조금 더 첨부하자면 보다 심각한 문제는 죽도록 일해도 가난하다는 워킹푸어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이미 들어섰다는 것. 아마 나 역시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이 범주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