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빼도 박도 못하는 일정이 하나 있다. 어머니의 추상같은 명령에 의한 교회 출두령이다. 그나마 일요일 출근을 했던 지난 삼개월동안 자연스럽게 면제 아닌 면제를 받았지만 이제 조금 널널해져버려 토요일도 쉬는 바람에 그냥 일요일은 교회를 가야만 하는 입장이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 때마침 마님은 12월이 제일 바쁜 시기로써 매 주말마다 공연이 잡혀있다. 일 년 열두 달 중 한 달을 몰아서 호두를 까는데 집중하는 12월 달이다 보니 면제되시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개근상에 빛나는 주니어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가 조용히 예배드리고 2부 예배 보신다는 어머니는 교회에 남고 아버지는 친구 분 만나러 고고씽 하시고 그냥 주니어가 사달라고 조르는 까까 몇 개 슈퍼에서 사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문제는 집으로 올라가는 동네 골목길에서 발생했다.
워낙 얽기 설기 뒤엉킨 동네 골목길이다 보니 누구 하나가 전화번호 안남기고 차를 좀 비 매너스럽게 주차하면 꽉 막힌 정체가 발생한다. 더군다나 올라가는 차와 내려오는 차기 마주치기라도 하면 서로 빼지 않고 지그시 상대방 쳐다보면 역시나 정체가 생기는 상황이 연속되곤 한다. 이런 문제해결을 위해 거주자 우선 주차가 지정되었고 일방통행로가 만들어 졌다. 이러한 조치 이후로 골목길 정체는 현저히 눈에 띄게 줄었고 나름 질서가 잡힌 주차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조치가 무색한 어떤 운전자를 정통으로 만나 버렸다. 택시를 타고 집에 거의 도착하여 일방통행 골목길을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웬 중형차 하나가 골목길에서 튀어나와 내가 탄 택시가 육안으로 보이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칠해진 화살표 역방향으로 급하게 내려와 앞을 막아선다. 그리곤 가만히 택시를 쳐다보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일방통행임을 이미 아신 기사 아저씨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클락션을 살짝 누른다. 건너편 차의 운전자는 미동도 안하며 오히려 뻔뻔하게 손가락질을 하며 내려가라 모션을 취한다. 참다못한 기사 아저씨는 차창을 열고 소리를 지른다.
‘일방통행이에요 아주머니. 아줌마 차 뒤로 빼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안한다. 우린 이미 고갯길의 95%를 올라왔는데 겨우 5%진입한 아주머니는 못 비키겠단다. 그것도 역주행을 해놓고서. 오히려 버팅 기며 우리보고 차를 빼라고 소릴 지른다. 기사아저씨 얼굴이 굳어진다. 짜증이 몰려오는 표정이다.
난 정말 착하게 살고 싶었다.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주니어를 택시 뒷좌석에 조용히 앉혀놓고 차에서 내렸다. 흠칫 놀라는 아주머니를 목격한다. 하긴 택시 안에서 웬 시커먼 곰 한 마리가 기어 나오니 놀라기도 하시겠지. 이때 중요하다. 최대한 샤방샤방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야 한다.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 바로 핸드폰으로 112누르실 것이고,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들기며 접근하면 괴수출현 되는 상황이다.
샤방샤방한 표정이 먹혔는지 아주머니는 별다른 행동이 안 보이신다. 그리고 조용히 차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주먹으로 꽝꽝 치면 경계심을 유발하며 덜컥 하며 도어 록이 잠기는 소리를 듣게 된다.) 다행히 차창이 내려온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머니께 말씀드린다.
‘저기...아주머니.(오버해서 누님이라고 하지 마라. 역효과다.) 일방통행인데요. 막말로 저기 저 기사아저씨가 그냥 차 돌진해버려서 충돌하면요. 아주머니가 옴팡 써요. 일방통행 위반은 에누리 없거든요. 쌍방과실도 없어요. 그냥 아주머니가 죄다 물어내야 해요. 최악은요. 나쁜 맘 먹고 병원에라도 누워 봐요. 보험료 오르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아주머니가 조용히 차 빼시는 게 최선이에요.’
비릿한 썩소를 날리며 아주머니를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응시하며 꽤나 불량스럽게 말을 마쳤다. 10분 후 나와 주니어는 집에 들어와 마루에서 신나게 과자를 까먹으며 도라에몽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오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아무리 착하게 살고 싶어도 세상이 날 착하게 살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난 정말정말 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난 곰의 탈을 쓴 여우라서 독한 맘을 먹으면 상대방의 상처가 오래가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차카게 살고 싶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