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 음식을 맛있게 하는 집. 다시 말해 맛 집이라는 개념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온 것 같다. 아니 조금 왜곡해서 말하면 이제 어중이떠중이 개나 소나 다들 아는 유명해진 맛 집은 전국 방방곡곡 널리고 널렸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러다 보니 나오는 부작용은 수도 없이 많다. 일단 매스컴에 한 번 뜨고 가게 한쪽 벽에 무슨무슨 TV프로에 출연했다는 사진들이 액자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맛이 변하고 양이 줄어드는 집들을 많이도 목격하기도 했었다. 결론은 그 집엔 다시는 발걸음을 안 하게 되는 사태까지 불러온다.

얼마 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사무실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빗속을 뚫고 무려 버스로 두정거장의 거리를 걸어 유명하다는 전집에 가게 되었다. 꽤 많은 양의 비는 쏟아지지 거리는 멀지 바지는 빗물에 젖어 점점 달라붙기 시작하지, 이런 고초를 겪으며 먹는 음식이 맛이라도 없다면 후회하는 걸로 모자라 그 집에 가자고 주장한 사람을 원망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더랬다.

겨우겨우 빗속을 뚫고 걸어간 그 집에 당도하니. 무슨 전을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이런 악천후에 우산을 받쳐 들고 줄을 길게 서있다. 하긴 이런 악천후니까 기름기 자글자글한 음식에 걸쭉한 막걸리를 들이켜고 싶은 사람의 비슷비슷한 공통적인 심리가 작용한 까닭도 있겠지만 워낙 사람 많은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인간형에겐 쥐약 같은 환경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도 걸어 온 거리가 억울해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자리를 차지했고 앉자마자 기본 찬을 분주히 내오는 아주머니 손길에선 웬만한 프로복싱 선수의 스트레이트보다 더 빠른 속도감이 엿보였다.

풋고추와 마늘 대, 평범한 된장 한 종지, 매운 고추가 총총 썰려 담겨진 간장, 그리고 평범한 깍두기. 익히 봐왔던 평범한 밑반찬이 나오고 아주머니의 재촉에 만만하고 다양한 모듬전을 주문했다.

사람이 많아서일까 먼저 내온 막걸리 한 주전자를 깍두기와 풋고추로 비워가고 있을 때까지 전 지지는 소리와 냄새는 진동하지만 우리들이 자리 잡은 밥상엔 어떤 기름진 음식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사람이 많다보니 밀리고 밀렸나 보다. 그래도 이런 날 손님 많은 걸 알면 미리미리 준비 좀 해두지 하는 약간은 짜증스런 생각을 걸쭉한 막걸리로 간신히 누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아주머니는 모듬전이요~란 외침과 더불어 채반에 담겨 나온 각양각색의 전을 내놓으신다. 그냥 그렇다. 다른 집보다 조금 두툼한 모양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적다. 원래 유명한 집인데 얼마 전 TV출연으로 손님이 더 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들었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양이 내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 맛은 어떤가. 먼저 도톰한 동그랑땡 하나를 잘라 입에다 집어넣었다.

입천장 딜 뻔 했다. 어찌나 뜨겁던지. 노르스름하게 계란으로 입힌 표피를 뚫고 담백한 두부와 텁텁하지만 고소한 고기 맛이 살짝 오독오독 씹히는 야채와 조화롭게 입안에서 퍼진다. 맛은 있네.. 약간은 떨떠름한 평가를 뒤로하고 명태 전을 입에 가져간다. 꽤 큼직하기에 한 입에 들어가는 크기로 젓가락을 놀려 잘랐더니만 하얀 명태 속살이 결대로 부서지며 뽀얀 김을 내뿜는다. 식을 새라 입안에 집어넣었더니 간간하게 가미된 소금과 후추의 맛을 느끼게 해주며 명태의 새하얀 속살이 입안에서 가득 터져 나간다. 어라...이것도 맛있네.. 다음엔 호박전. 기름을 겹겹이 두른 느끼한 전이라는 종목임에도 호박의 아삭함이 제대로 살아있다. 그리고 깻잎으로 앞뒤로 두른 고기 전까지 하나하나 뒤지지 않고 뛰어난 맛을 선사해준다.

그래도 뭔가 아쉽다. 아마 채반에 나온 전은 맛은 있지만 푸짐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양손에 뭔가를 들고 다가오신다. 그리고 채반에 뭔가를 드르륵 쏟아 넣으신다. 처음에 게걸스럽게 먹었던 전과 비슷한 양의 모듬전이 쏟아져 나온다.  설명을 들어보니.

처음부터 수북하게 쌓아서 손님께 내놓으면 먹다보면 밑에 전이 식는단다. 그래서 채반에 적당하게 2번 나눠 준다는 것. 그리고 더불어 책상다리로 장시간 앉아 막걸리를 먹다보니 다리 좀 피고자 주방 쪽으로 달려가 깍두기를 받아오며 봤던 주방풍경은 이 집에 왜 장사가 잘 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꽤 북적북적한 주방엔 4명 정도의 아주머니들이 바쁘게 전을 부치고 만들고 있었던 것. 그러니까 장사가 잘 돼 백만 대군 의 손님이 몰아닥쳐도 미리 전을 만들어 다시 데우는 것이 아닌 그때그때 하나하나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는 것이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막걸리 다섯 주전자를 마시고 밖에 줄 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북적북적한 전집을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그 집의 전의 풍미는 입안에 가득히 남아있었다. 주방쪽 가벼운 칸막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깍두기를 가지러 온 나에게 열심히 계란 물에 전 재료를 담구며 좀만 기다려 “총각” 내 금방 부쳐서 맛있게 내줄게..라고 웃으면서 말하시던 아주머니를 봐서라도 종종 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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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14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이밤에 전이라니.... 저는 제가 부친 전 빼고는 다 좋아하는데요. 아 먹고 싶어요. ^^

Mephistopheles 2009-08-14 11:27   좋아요 0 | URL
아니..왜 본인이 스스로 부친 전에 대해 아낌없는 혹평을 하시는지...^^ 자신을 가지세요..

바람돌이 2009-08-21 00:59   좋아요 0 | URL
저는 집에서는 제삿날에만 전 부칩니다. 4-5시간을 내리 전 부치고 나면(심할때는 8시간 부친적도 있습니다) 먹고싶은 생각 싹 사라집니다. 당연히 평소에는 전 부치는것 같은거 안합니다. ㅠ.ㅠ

조선인 2009-08-1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각이라니, 움하하하하핫 아홉수 양반께서!

Mephistopheles 2009-08-14 11:27   좋아요 0 | URL
전에 집중하세욧! (1)

무해한모리군 2009-08-1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거기가 어디입니까..
오늘 가야겠습니다..
여기 연필들고 있슴다 ㅎㅎㅎ

Mephistopheles 2009-08-14 11:29   좋아요 0 | URL
사당동 사거리에서라면 4호선 10번 출구로 나와야 하고 암튼 이수역과 사당역 중간쯤이에요. 교보생명 건물 뒤로 돌아가 사당쪽으로 쭈욱 걸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8-14 11:32   좋아요 0 | URL
오 가본 적이 있는듯해요.
매피님은 정말 어딘가 저의 근처에 계신듯 ㅎㅎㅎ

Mephistopheles 2009-08-14 12:07   좋아요 0 | URL
상호명이 전주전집이라죠..?? 그 근방에서 꽤 유명하다고 하네요..

보석 2009-08-14 12:16   좋아요 0 | URL
오오 사당역 10번 출구로 나와 이수역과 중간...언제 한번 가봐야겠군요. 사당역 쪽에 은근히 맛집이 많은 듯해요.

무해한모리군 2009-08-14 13:17   좋아요 0 | URL
보석님 우린 족발도 다 먹을 수 있었으니까 둘이 모듬전도 다 머글 수 있을 듯 어때요? ㅎㅎ

보석 2009-08-14 13:32   좋아요 0 | URL
아마 가능할 듯합니다. 조만간 전주집으로 한번 뜨죠.ㅎㅎ

Mephistopheles 2009-08-14 14:51   좋아요 0 | URL
에잇 먹보들~! (양 많으니까 막걸리도 적당히 섭취하세요~ 누룽지 막걸리로 드시길.)

paviana 2009-08-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하고 싶은 말은 빨간색으로 쓰여진 그말 하나잖아욧!
좋겠수 총각 =3=3=3

Mephistopheles 2009-08-14 11:29   좋아요 0 | URL
전에 집중하세욧!(2)

보석 2009-08-1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젤 좋았던 건 저 빨간 글자인 거죠?ㅎㅎㅎ

Mephistopheles 2009-08-14 11:29   좋아요 0 | URL
전에 집중하세욧!(3)

보석 2009-08-14 12:16   좋아요 0 | URL
사진이 없으므로 무효! 그러니까 드시기 전에 사진부터 찍으셨어야죠!

sooninara 2009-08-1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총각이란 말만 눈에 들어와요^^

Mephistopheles 2009-08-14 14:52   좋아요 0 | URL
아 글쎄...전에 집중하세욧!(4)

노이에자이트 2009-08-1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음식은 전라도로군요!

Mephistopheles 2009-08-18 10:1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지역주의가..아니라..확실히 그쪽 동네 음식이 맛나긴 해요..^^

비로그인 2009-08-1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뽐뿌!

Mephistopheles 2009-08-18 10:11   좋아요 0 | URL
사진이 없으므로 뽐뿌까지는....(그래도 비만 오면 생각난다는....으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