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젊은 사람들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야. 젊은 사람들이 볼 내용은 없어 다 쓰잘데기 없는 내용들뿐이야. 그러니까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 내용을 깡그리 잊어! 그게 맞는 거야 내 말이 정답이야 그지 안 그래..??"

갑자기 웬 뜸끔없이,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읽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에 대해 저런 냉담한 주장을 펼치는 내용을 기재했을까. 사건의 발단을 찾아가고자 한다면 시계를 한 달하고 반 정도로 돌려야 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사무실은 바쁜 시간을 쪼개 회식을 위해 종로 원정에 나섰고 1차를 끝내고 주변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으로 배회하다 들린 곳이 조계사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지 도시 속에 자리 잡은 법당은 제법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법당 본 건물 옆에 자그마하게 위치한 이런저런 불교관련 용품을 파는 가게에 잠깐 들렸을 때 내 눈에 띄는 건 흔하고 흔한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었다.

어린 20대 중반의 직원들에게 혹시 이 책 읽은 적 있냐. 넌지시 물어봤더니 읽어보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마침 지갑 속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던 문화상품권을 이용해 두 권을 구입하여 품에 안겨줬었다. 그 후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책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고 책을 읽은 직원 한 명이 너무 종교적인 청렴함을 보여주기에 약간은 부담이 된다는 감상을 평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위의 저 붉은 글씨의 내용을 강변한 사람은 그 직원의 옆에 앉은 낙하산 양반이었던 것. 책에 대해 혹평을 하기 시작하자 그 책을 선물한 내가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그 직원은 민망함에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냥 조용히 한마디 해줬다.

"한 번 읽으라고 준책이 아니고 30이 되었을 때 또 한 번 읽어보고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또 한 번 그리고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 40이 넘었을 때 다시 읽어보길 바래."

물론 옆에서 이런 책을 몇 번씩 읽을 필요는 없다고 강변을 하는 그 양반의 말은 그냥 귓등으로 흘려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였을까 책상 위에 A4 프린트 물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사무실 각자의 책상에 하나씩 올라와 있었고 대충 보아하니 누군가의 산문시를 프린팅 하여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 범인은 낙하산 양반. 더불어 한마디 거드신다.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좋아하는 신데... 출력하다 보니 많이 나와서 읽어 보라고 나눠준 거야.."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내용은 청산에 살어리랏다. 와 비슷한 맥락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속세의 짐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살자는 내용.

그냥 조용히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 시는 절대로 20대 젊은 사람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시겠군. 한창 피 터지게 일할 시기에 웬 청산.? 자연회귀..? 무소유가 쓰레기면 이 시는 핵 폐기물이겠구나.."

이런.. 혼자말이라고 중얼거린 게 목소리 볼륨을 지나치게 높였나 보다. 고갤 처박고 킥킥 거리는 직원 두 명, 미소 짓는 직원 세 명, 얼굴이 붉게 물들이며 입술을 삐쭉 나오기 시작하는 직원 한명이 내 눈에 들어온다.

뱀꼬리 : 객관적으로 다양하게 나오는 게 당연한 감상이나 느낌을 획일적으로 주장하고 강요하는 모습은 정신적 파쇼가 아니고 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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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9-07-0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가끔 메피님 사무실에 놀러가보고 싶다니까요.

Mephistopheles 2009-07-03 13:57   좋아요 0 | URL
가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도 되고 코미디 채널도 되고 어쩔 땐 극기서바이벌 리얼리티 쇼가 되기도 하는 묘한 사무실인데도요?

2009-07-01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3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9-07-01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여행시 배낭 한구석에 들어있던 책이 법정스님의 무소유 였답니다.

Mephistopheles 2009-07-03 14:01   좋아요 0 | URL
소중하고 언제나 잡고 싶은 책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죠.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엉터리 실용주의 표방하며 지들끼리 배불리는 자들이 아닐까 싶은걸요..^^

카스피 2009-07-0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낙하산 인사라면 메피님보다 혹 높은분??
낙하산들 뒤끝이 많으니 조심하세용^^;;;

Mephistopheles 2009-07-03 14:01   좋아요 0 | URL
직책상으로만 높은 분이에요. 뒤끝이 있건 없건 그닥 신경쓰진 않습니다만.. 가끔 사람 심기 거슬리는 행동을 해주시면...질러줘야죠..^^

무스탕 2009-07-0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그 낙하산은 이 책을 읽어 봤다는 말일까요?

Mephistopheles 2009-07-03 14:02   좋아요 0 | URL
읽어봤으니까 자기 판단하게 그런 감상이 나오면서 그걸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요?

보석 2009-07-0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낙하산은 무소유를 제대로 읽지 않았을 거라는데 한표 던지겠습니다.

무스탕 2009-07-02 13:50   좋아요 0 | URL
신성한 보석님의 한 표가 아까워요.
그냥 손가락질만 해주세요. 흥!

Mephistopheles 2009-07-03 14:03   좋아요 0 | URL
책이라는게 활자를 읽어 머리속에 채워넣는다고 끝이 아니다보니 똑같은 책을 읽고 누군 일상생활에 과욕이 아닌 적당히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중이야? 웃기는 책이군..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존재하겠죠..

비로그인 2009-07-0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정 스님은 저 사는 땅끝 해남의 문내면 태생이시지요.
그쪽 지역의 전형적 미남의 얼굴입니다.
저의 부모님께서도 문내면이 고향이랍니다.
그런 연유인지, 이 양반 언행 듣자면 괜히 남 같지가 않답니다.
하하

법정스님의 말씀은 맑은 듯 일상적이시지요..


Mephistopheles 2009-07-03 14:04   좋아요 0 | URL
무소유라는 책 또한 종교인으로써 청렴함과 무욕을 나타낸다고만 보고 싶진 않거든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과욕과 시기로 인해 주변 사람뿐만이 아닌 자기자신까지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그걸 추스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보고 싶은데 그렇게 안보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나 봅니다.

비로그인 2009-07-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폭 찌질이 같으니. 유치해도 정말 유치한 낙하산이네요.
이런 인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네요. ㅋㅋ

Mephistopheles 2009-07-03 14:05   좋아요 0 | URL
살다보면 진짜 상식이라는 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을 분명 마주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