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은 유난히 조용하다. 내일밤도 조용할 것이며 모래밤도 조용할 것이다.


앞집은 개 한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키운다기 보다는 방목 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조그마한 짙은 갈색의 잡종견 암컷이였고, 꽤 오랜 세월 길에서 마주쳤으니 개들의 나이로는
호호할머니의 나이였을 것이다. 생긴 건 잡종견치고는 꽤 이쁘장하게 생겼지만, 그 개는
여타 다른 애완견과는 다른 환경를 갖추고 있었다.

일단 주인이 풀어놓고 키운다는 점. 그러다보니 집을 중심으로 어느정도의 자기구역이라고
지정해놓은 범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런면에서는 유기견의 모습과 흡사하다. 행여나
발정기라도 찾아오면 주변의 숫컷 유기견 몇몇이 그 집앞에서 본능에 충실한 숫컷의 표상을
삐죽이 세운 채 어슬렁거리는 것도 몇년에 걸쳐 봐 왔던 모습이였다.

개를 좋아하는 마님이라도 그 개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방목스타일로 개를 키운 주인 탓인지 그 자그마한 개는 성질은 사납기 그지 없었고, 행여나
지맘에 거슬리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사납고 날카롭게 짖어대기 일쑤였었다. 더군다나 그
짖어대는 지속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동네의 어느정도의 소음공해를 유발하는 지경까지
왔었다. 아울러 결코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그 개가 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타살에 의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마님이 직접 목격이 아닌 사후 수초 혹은 수분이 지난 상태를 목격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어슬렁거리던 그 암컷잡종견은 자신의 구역인 집앞에 축 늘어져 있었고 그 주변에
제법 큰개가 그 개의 배를 물고 있던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꽤 짙게 나있는
오토바이 타이어자국까지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추정은 두가지로 나올 수 있다.
큰 개가 상대적으로 작은 앞집 개를 물어 죽였던가 혹은 하루에도 수십번을 오고가는 배달오토바이
를 미쳐 피하지 못한 개는 사고를 당했다던가. 어느정도 개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는 마님의
주장은 후자에 맞춰지고 있다. 그 큰개에게 물렸다는 혈흔이나 어떠한 상처도 이미 세상을 떠난
그 앞집 개의 작은 몸에는 보여지지 않았다는 것...

그 개가 세상을 떠난 날 해가 떨어진 동네는 유난히 고요하다.
날카롭게 끝도없이 짖어대던 그 개의 존재유실이 동네의 정숙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와 함께 찾아오는 상실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출근길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우리집 대문 앞에서 배를 깔고 느긋하게 실눈을 뜨고 일광욕을
즐기던 그녀석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개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이 있다면 그 녀석도 거기서 남의 눈치 안보고 열심히 짖어대고 있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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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몇번이나 ...
동네 아이들과 지나가면서 이뻐하던 개들이 어른들에 의해 죽는 장면을 몇번이나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과 함께 인간의 잔인함과 이기심에 경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자신이 키우던 개를 직접 망치로 때려 죽일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자신을 향해 애정을 표현하는 개의 감정 따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보신탕이 먹고 싶으면 그냥 보신탕집을 가지...스스로 다른 생물의 감정에 '배신'하는
짓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가슴이 아프기만 합니다.

그들은 결코, '먹고 살기 힘들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비로그인 2007-05-19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야 심판을 받아 천국행이든 지옥행이든 결정되는 게 마땅하지만요 ㅎㅎ

무스탕 2007-05-1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정성에게 그런 기회가 닿을때마다 해 주는 말이...
조개는 죽으면 조개천국나라로 가고 물고기는 죽으면 물고기천국나라로 간단다..
짐승들은 그럴거 같아요...

파란여우 2007-05-1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들에게 추천한겁니다.

네꼬 2007-05-19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들에게 추천한겁니다. 2

Mephistopheles 2007-05-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님//보신탕을 먹겠다는 건말리지 않겠지만 키우던 개 잡는건 좀 자제했으면 좋겠어요...식용으로 키우고 있었다..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요..^^
체셔고양이님 // 인간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축생이 된다는 이야기가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요..^^ 다음생에서는 입장을 바꿔서 생활해보라는 식의.....
무스탕님 // 신림동에 있던 걸로 기억하는 조개구이집 이름이 조개천국이였는데...아놔 진지한 댓글에 그만...^^
무스탕님 // 복수요..?? 단수가 아니라요..???
네꼬님 // 복수요..?? 단수가 아니라요..??? 2

네꼬 2007-05-2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 마리의 문제가 아닐 테니까요. (같은 동물 입장에서 더욱 훌쩍.)

비로그인 2007-05-2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이하동문입니다. 저 역시 보신탕을 먹는 것은 말리지 않습니다만,
부디 -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가족'으로 생각하며 울부짖는 개의 가슴을 갈길갈기
찢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무교이지만, 불교에서 그러더군요.
죄가 많아 인간으로 태어나 모든 고행을 겪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기독교적인 문화에서도 이런 비슷한 말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 생에서 점수가 후하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못하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저를 비롯해 죄 많은 동물입니다, 인간은 -

Mephistopheles 2007-05-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 과가 틀리잖아요 과가...^^ 개과, 고양이과
엘님 // 지구상 최대의 해로운 동물이 인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