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아랍의 작은 나라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100M예선전에서 이상한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출발선에 선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은 남자 못지않은 우람한 근육의 소유자들이며, 출발총성이 울리면 그 발달된 근육을 이완 혹은 수축시켜 결승점을 향해 튕겨 나갈 것 같은 긴장감이 팽팽했었다.

그 중 2번레인이였나 3번레인이였나.. 역시나 단거리 스프린터의 발달된 근육을 자랑하는 여자선수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녀가 입은 복장은 과학적인 소견으로 공기의 저항을 줄이겠다는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복장이였던 것.. 꽉 붙는 타이즈 같은 옷도 아니였고 더군다나 머리에는 차도르를 뒤집어 쓰고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과는 2등으로 예선통과...만약 그녀가 다른 선수들처럼 타이즈같은 복장을 하고 달렸다면 1등은 당연하고 결승에서 메달권에도 들지 않았을까...

어제 저녁 EBS를 통해 본 이란영화 " 내가 여자가 된 날"을 보면서 아시안게임의 그 아랍계여성선수가 생각이 났다.

종교가 사회규율적인 면모로 두각을 나타내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들에 관련된 영화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히 독특한 영화리라 기대했었고 그 기대는 적중했다. 총 3명의 여성이 나오는 이 영화는 1편은 9살 소녀..2편은 결혼을 한지 얼마 안된 여자 그리고 3편은 이제 살날이 얼마 안남은 노파가 나오고 있었다.



1편의 주인공 9살짜리 여자아이 어느날 소녀는 여자가 된 날을 맞이하게 된다..새로운 시작과 함께 과거와의 단절도 의미한다. 막대기를 길에다 꽂아 놓고 "시간이 없다"고 외치는 소녀는 충분히 인상적이였다.

9살짜리 소녀는 여자가 된 날을 맞이하게 된다.
차도르를 걸치고 가깝게 지내던 동네친구들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사소통은 두절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 마지막 날 천진난만한 소녀는 바닷가에서 드럼통으로 배를 만든 사내아이의 장난감과 자신의 차도르를 바꾸는 만행(?)을 저지르고, 언제나 친하게 지냈던 동네 사내아이와 벽을 사이에 두고 사탕을 번갈아 빨아먹으며, 여자가 된 날을 맞이하게 된다.



질주하는 차도르의 여인들....해안가 풍경은 지극히 아름다우나 그녀의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2편의 여자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변도로를 달리는 여성 사이클 대회에 참가한다.
말을 타고 온 남편은 자전거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으나 이 여자는 남편의 말을 묵살한다. 끝도 없이 이어진 도로를 질주하는 그녀 앞에 그녀와 관계가 있는 남성들이 하나 둘씩 하나같이 말을 타고 나타난다. 남편에 이어 주례를 선 선생님...아버지와 친척어른들...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오빠들에 의해 그녀의 자전거는 강탈당하면서 2번째 이야기는 끝이 난다.



과연 노파의 손가락에 묶여진 마지막 노끈이 정의하는 물질 혹은 대상은 무엇이였을까?

여객기에서 내리는 노파로 시작되는 3편은 그녀의 물품구입으로 시작된다.
유산을 상속받고 그 돈을 여러 가구와 물품을 사는데 올인을 하게 된다. 치매의 영향인지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묶은 색색들이 노끈으로 각 물품을 정의하고 그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하나씩 사라지는 노끈들...최후 단 하나의 노끈이 남았으나 그녀는 그 노끈이 의미하는 물품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독립영화스럽고 거칠고 다듬지 않은 분위기는 이 3편의 옴니버스가 진행되는 동안 유지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수많은 대사들이 장황하게 오고가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속의 이미지 하나하나는 감독이 배우의 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능가하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9살 소녀부터..자전거를 타는 레이스 현장에서 이혼 당하는 여자.. 생애 한번도 가져본적이 없는 자신소유의 물질들을 유산을 탕진해가면서 보상받는 노파까지..

3편의 옴니버스는 서로 연관이 없는 듯 싶어 보이지만 마지막 3편 노인이 나오는 부분에서 연결되는 사실을 알게 된다. 9살 소녀의 차도르는 바다를 통해 보다 넓은 세상을 추구하는 돛대에 돛포로 매달리게 되며,  경주를 포기했다고 생각되는 그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교통수단(아마도 감독은 남자들이 탄 말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인 말을 타고 나타난 남성들을 방해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전거로 계속 그길을 달리고 있다는 암시도 보여준다.

마지막 편.. 노파가 사들은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아이들의 힘을 빌려 조잡하게 만들어진 드럼통배에 실려 바다에 올려지는 순간...아울러 그 물질적인 것들의 중심에 그녀도 역시 바다위에 있다는 사실..그리고 새끼 손가락에 있는 어떤 물질을 지칭하는지 모를 노끈....

이슬람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삶의 방식과 소리없는 저항......몰입하고 느끼기에는 충분 그 자체였었던 영화...별을 무수히 줘도 아깝지가 않다.



 내가 여자가 된 날
(The Day I Became A Woman, Roozi Khe Zan Shodam, 2000)

감독 :  마르지예 메쉬키니
주연 :
파테메 체라그 아칼 Fatemeh Cherag Akhar 
샤브남 토로위 Shabnam Toloui 
아지제 세디히 Azizeh Sedighi

2000년 시카고국제영화제 실버 휴고상 수상,
2000년 토론토 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어워드,
2000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출품.
2000년 부산 영화제 뉴 커런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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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7-01-1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EBS 넘 맘에 들어요. ㅎㅎ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고 남편은 이란 영화계의 거장인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지요. 딸도 영화 감독이구요. ^^

키노 2007-01-1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던데 사정상 다 보지 못했어여. 아!!! 아깝다. 예전에는 비디오테이프로 복사해놓고 보기도 했는데, 이젠 비디오가 고장이 나서 복사도 못하니^^;;

마노아 2007-01-14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히 인상적이에요.

프레이야 2007-01-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봐야할 영화네요. 디비디를 구해봐야겠어요.

stella.K 2007-01-14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걸 그랬습니다.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막은 영...더빙이 좋아서리...아유, 어깨, 허리, 팔, 다리야...>.<;;

Mephistopheles 2007-01-1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 저도 영화보고 정보검색해봤더니..집안이 영화인집안이더라구요.^^
키노// 이런이런..복사할까 말까 했는데..^^ EBS에 계속 독자투고하면 다시 방영해주지 않을까요??
마노아님 // 예 영화가 대단히 인상적이였습니다..^^
배혜경님 // 글쎄요 이런 영화가 국내 DVD로는 출시가 될리가 없는데...혹시 해외에서 구입하실 생각이신지요..??
스텔라님 // 3번째 스토리 노파같은 댓글이십니다...ㅋㅋ

chika 2007-01-14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이런 영화는 어떻게 보나요? ㅜㅡ

Mephistopheles 2007-01-1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S에서 어제 해줬습니다 치카님..밤 11시에요..호호호
다음주에는 알 파치노와 진 해크먼 주연의 "허수아비"
입니다..^^

stella.K 2007-01-1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훤히 꽤뚫고 계시는군요! 알 파치노라...땡기네. 허수아비. 이번엔 힘들어도 볼까나. 더빙으로 해 주면 좀 좋아? 쩝...

Mephistopheles 2007-01-1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뚫고 있다기 보다는...EBS의 경우 해당영화가 끝나면 바로 다음주에 편성된
프로그램의 예고를 해준답니다..^^ 계속 보고 있으니까 허수아비가 다음주에
편성되었다고 나오더군요..^^

프레이야 2007-01-1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정말 국내에서 디비디로 나오지 않았나봐요. 없네요. ㅜㅜ

Mephistopheles 2007-01-1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아무래도..이런 조금은 독립영화같은 작품들은 여간해선
출시되기 힘들 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