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71020
≪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
p57 여성의 입을 틀어막는 남성들
* 독서기록 171018 여혐 여자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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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거림’이 약자 을의 방법이라면, 강자의 방법은 설명하기 (mansplain ; 여기서의 man은 남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상대의 ‘말 가로채기’며 상대의 ‘입 틀어막기’가 있다.
여자 대통령과 남자 장관, 어머니와 아들 ; 이들 관계에서 여성의 입을 틀어막는 남자가 있을까, 아니면 남성의 입을 틀어막는 여성이 있을까? 성별의 차이가 아니라 권력의 차이이나 성별에 따른 권력 비대칭이 있으므로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권력 관계는 군 문제를 언급할 때 다시 하자.)
그러나 권력 관계를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 입이 틀어 막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교회에서였다. 성경에 나온 에피소드들이 이해가 안 되었다. 대화 상대에게 물었다. 몇 가지 대답을 해 준 후, 내가 계속 질문을 하자 이렇게 내용의 답변을 해 준다. ; 신앙(종교?)는 이성으로 판단할 것 아니고 믿음(신앙?)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계속되는 질문은 결국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네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질문과 답변, 대화, 토론하자는 것은 지나치게 이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유한국당 지지자인 직장 상사와 THAAD(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나는 공대 출신 친구의 이야기를 빌어 THAAD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발언을 했다. 상대는 ‘당신의 공대 친구들이 무기 전문가는 아니고.’라고 말을 끝었다. 중간에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내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은 사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는 것이다. 내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을 사람이며,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사람이며, 나의 반론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한 비판처럼 포장하려 한다는 것이며, 결코 설복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자신에게 설복되어야 마땅한데, 내가 고집을 부린다고 한다.) 나는 그쯤에서 대화를 그만 두자고 했다.
마지막은 알라딘 서재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을 댓글로 주고받는데, 나는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바에 있어 모순을 지적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상대는 마지막에 가서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언어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주제는 금기시 되는 주제이자, 자신은 견해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내 의견에 설득되지 않으면 상대를 강퍅하다고 판단하는 주제이다. 그리고 이성, 논리, 말의 한계를 내세우며 상대의 입을 틀어 막는다.
나는 수시로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사람으로, 결코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을 사람으로, 내가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반론을 제시하면 토론과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내가 제시한 근거들은 그럴싸한 포장을 씌운 궤변으로 평가받고 비판받는다. 나의 대화 상대인 기독교인은, 자유 한국당 지지자는, 내게 절벽 같다고 한 페미니스트는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바꿀 마음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