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920
≪과학한다, 철학한다≫
알라디너 S1과 댓글 대화를 나눈 뒤라 상대의 감정을 상할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예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의 일부분이다.(아래 이야기는 관점에 따라 무신론자가 이야기했어야 맞다.)
무신론자 A와 기독교인 B가 신의 유무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무신론자 A가 신이 없다는 증거로 “내가 신을 모욕하겠다. 욕을 하겠다.”고 말하였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을 모욕한 죄로 천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대고 무지막지한 욕을 했다. 한참 욕을 할 때도, 한 이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신론자 A가 ‘봐라 이것이 신이 없다는 증거다’라고 말하니, 기독교인 B는 이것은 신이 없다는 것의 증거가 아니고 신의 인자하심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상 최대의 쇼≫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著 ,2009)에서 ‘고대 로마의 존재 여부’를 진화론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p14 당신이 로마사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상상해보라. ... 정치적으로 특히 경제적으로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일군의 무식한 자들이 늑대 떼처럼 당신을 몰아세우며, 가엾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로마인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설득시키려고 끈질기게 노력한다. ; ‘무식자 들’이라는 표현은 좀 감정적이다. 사람들이라고 하자.
p22 이론이란 무엇인가? 사실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 내가 남성과 여성에 대한 글에 알라디너 S2 님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 여성이 남성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의견인지요?
; 음...제가 성별차보다 개인차를 중요하게 본다는 건, 성별적 특질에 관한 생물학적/진화론적 연구가 진행중에 있고, 연구 데이터도 상반되고 경합하는 중이며 가령, 사회생물학에 대한 인문학적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해서, 그것을 섣불리 판단의 근거로 삼거나 뭔가를 유추 해내는 일, 그것보다는 개인적 퍼스낼리티로 접근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라 판단되어서 한 말이구요.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 과학이 확률적 지식이지만 객관성의 강도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지동설의 경우 역시 과학으로 확률적 지식이지만, 바뀔 확률이 낮을 것입니다. 수학보다는 물리학이 물리학보다는 생물학이, 생물학보다는 인지과학이 객관성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별적 특질에 관한 생물학적/진화론적 연구’에 관해서는 제 의견은 어느 정도 연구 결과가 확립된 상태라고 봅니다. 물론 진행 중인 분야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아무리 연구가 진행되어도 수학과 같은 객관성을 갖지는 못할 것입니다.)
현대 과학은 연구, 동기, 결과에 있어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고 과학자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문학 분야에서 가치 판단을 하고 있지만, 가치 판단에 의해 사실 판단이 바뀌지 않습니다. (알라디너 S1님의 글과 대구를 맞추자면, ; 자연적인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옳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진화심리학’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가 과학인지 (아니면 어거지인지), 과연 설득적인지, 어디까지가 사실판단에 해당되고 어디부터가 가치판단에 해당되는지를 어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알라디너 S3 님과는 대체( 또는 대안) 의학에 짧게 댓글 대화를 나눴다. 알라디너 S3님은 주류 의학에서의 대체 의학에 대한 무시가 기득권으로 보았고 나는 대체 의학을 비과학으로 보았다.
≪시간의 역사≫ p21 (버트랜드 러셀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 강연이 끝나자 한 자그마한 노부인이 뒷자석에서 일어나서 하는 말이 “당신이 한 이야기는 엉터리예요. 우주는 큰 거북 등에 얹힌 납작한 널빤지라구요.” 그 과학자는 넌지시 웃으면서 “그 거북이가 올라 탄 것은 무엇이지요?”하고 되물었다. 노부인은 말했다. “젊은 양반, 참 똑똑도 하시군요. 그렇지만 이건 밑바닥까지 전부 거북이란 말씀이에요!” ... 그렇다고 과연 우리는 더 나은 생각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 마립간이 지지하는 과학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내가 알라디너 M 님에게 ‘페미니즘’이 종교화되고 있는 것 같다는 댓글을 남긴 적이다. 이 말 역시 설명하기 힘들다. 내의 ‘반-페미니스트’의 정서가 종교화되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 없다. 단지 내게는 천동설보다 지동설이 더 설득적이었고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이 더 설득적이었다. 내게 ‘≪유리천장의 비밀≫ - 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 ㅣ 다윈의 대답 시리즈 4’이 더 설득적이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페미니즘의 모순≫이 더 설득적이다.
성경 ;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