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0303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본능本能과 도道
p34 동물적 충동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맹자가 갈파했듯이 식과 색이다.
① 색色 ; “천하에 제일 통과하기 어려운 것이 여색이다. 너희들은 능히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느냐. 이 관문은 능히 쇠와 돌도 녹일 수 있다.”
② 식食 ; 음식을 대할 때 사람들은 자신을 잃기 쉽다.
내가 공준 postulate로 받아들인 문제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와 ‘왜 인류는 지속되어야 하는가?’이다.
* 새로 정리된 문제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87045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긍정이 없다면 죽음과 인류의 멸종이 남는데, 혹시 판단이 틀렸을 경우 가역적이지 않다. 그래서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색色은 종족보존본능, 식食은 개체보존본능이다.
(남명 및) 나와 같은 플라톤-노자주의자는 위계位階에 대한 가정을 많이 갖는다. 본능은 하위이고 이성은 상위로 가정한다. 나의 (틀린) 직관에 의하면 이 가정을 지지한다. (정확히는 했었다.) 그러나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콜버그는 도덕 발달 6단계를 제시했다. 현재의 학자들은 도덕 발달이 순차적 위계를 갖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샤르트르는 ‘미개인’ 존재를 이야기하지만 레비 스트로스는 반대했다. 굴드는 진화에서 우연, 무지향성을 이야기하지만 도킨스는 우연을 통한 지향성을 이야기한다.
p54 당나귀 가죽에 기린의 형상을 뒤집어 씌운 ; 무엇이 기린인가? 있기나 한 것인가?
사실이든, 사실이 아닌 착각이든 ; 플라톤, 콜버그, 샤르트르, 도킨스, 남명, 그리고 마립간이 흘긋 본 것은 무엇인가? 너무 추상적인가, (그래도 추상적이지만 그나마) 구체적인 예, 남녀평등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아니 지향점이 존재하는가?
‘모든 문화나 사회는 하나의 체계로서 개인 차원의 실존적 결단이나 책임, 자유의 의미와는 상관없는 <집단적 표상>의 본질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레비스트로스 <서울시립대신문>
p45 고봉은 사단四端이든 칠정七情이든 그 표출의 기원과 동력학 사이에 본질적인 구분은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윤리적 관점에서 그 표출의 발현이 얼마나 적절하냐의 여부, 즉 과불급過不及을 문제 삼을 뿐이다. 그러나 퇴계는 이같은 <혼륜>의 사고를 위태롭게 여겼다. 그 결과 선악의 경계를 불투명하게 하여, 이윽고 윤리적 원칙의 해이 혹은 폐기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