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혁명, 농경 사회로 전환

 지금은 세계사 선생님들이 어떻게 강의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중고등하교 시절에 배운 바로는 구석기 시대에는 수렵, 채집생활을 하던 중 과도하게 수렵과 채집이 되면서, 잡아 놓았던 가축이 번식을 하는 것을 보고 목축이 발생하고, 채집해 놓았던 식물의 씨앗이 싹이 트면서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족함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 변화가 얼마나 힘들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을 보더라도 미리 미리 공부를 했더라면 편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을 꼭 시험날짜가 닥쳐서야 시험공부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떠니 제 자신이 한심하죠. 그러나 이런 성향은 저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및 집단에게 적용됩니다. 사업실적이 좋은 기업이 경영혁신을 꾀하거나 미래를 대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우리나라의 재벌이라고 불리던 기업군들은 1960-70년대의 달콤한 성장의 열매의 맛을 잊지 못하여, 21세기 맞는 기업의 변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몇몇 훌륭한 사람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며 앞날을 준비합니다. 요즘은 그나마 지식의 축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거나 시대에 맞추어 자신변화를 어느 정도합니다. 그러나 그 원시시대에 구석기인들이 당장에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는데 수렵 채집에서 농경 목축으로 자신 혁신을 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저의 추론은 오히려 수렵 채집이 한계에 부딪쳐 목축 농경을 하지 않으면, 집단이 멸망할 위기에 봉착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집단 500명 정도의 인구를 갖은 부락에서 수렵 채집으로 얻을 수 있는 식량이 400명 정도 먹여 살릴 정도이고 그리고 계속해서 식량난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단은 농경을 시작했는데, 어쩌면, 농사에 드는 종자(씨앗)와 노동일을 포함해서 아마 첫해에는 수렵 채집보다 더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농경으로 전환하지 않았을 경우 400명 정도 인구를 유지할 것을 300명 정도로 더 감소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해 농사가 성공한 이후에는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가능해 이후 더 큰 집단으로 성장했겠지요. 아마 정치나 권력도 이 희생을 감당하기 위해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기 없는 자기혁신은 매우 드뭅니다. 역사학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요즘에는 세계사 책을 안 읽어 정통 학설이 어떤지 잘 모른지만) 신석기 시대에 매우 궁핍한 시기, 위기의 시기가 농경사회로 전환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아무런 고고학적 증거를 갖지 않은,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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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zzlist 2004-01-03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Jared Diamond 교수의 "총균쇠" 보셨어요? ^^

마립간 2004-01-03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이야기는 제가 겪은 사회적 경험에서 내린 추론입니다. 유명한 교수님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Jared Diamond 교수님의 '총균쇠'를 보지 못했는데, 이제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는 과학교양도서(수학, 물리)에 편독이 심하고, 인문계통은 약간의 철학서적을 읽는 정도이기 때문에 문학, 역사에 관해서는 손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