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시험하다
곰곰생각하는발 님과 <춘향전>의 어사출또 후 이몽룡이 춘향에게 수청들라고 제안하는 장면을 두고 간단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내가 꽤 오래 전부터 가졌던 의문이다. 유년 시절에 TV에서 어떤 장면을 봤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께 여쭤봤고, 어머니는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답을 듣고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에 TV에서 봤던 줄거리(TV였는지도 불확실하지만)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시험하고 그 과정에서 일이 꼬여 불행한 결말이 났(을 것이)다. 만약 사랑을 신뢰하여 시험하지 않았다면 결말은 행복하게 났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의 교훈은 사랑은 시험하지 말라는 것.
사랑을 믿음으로 치환하여도 같은 논리나 느낌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분류하고 정의하려면 이 또한 이야기가 길어지니, 사랑을 무정의 용어로 사용한다. 마립간의 정의에 따르면 사랑은 천년 정도는 변하지 않아야 가히 ‘사랑이다’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마립간의 판단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사랑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다. 즉 사랑이라는 의식 작용은 단일 ‘정체성’을 갖지 않는다.
마립간의 정의에 맞는 사랑이라면 사랑을 시험할 필요가 없다. 인생이 길어야 100 년이니 일생 변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시험을 한다고 해도 모두 통과할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개념에서 사랑은 변할 수 있다고 한다. 광고 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만약 움직이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이 움직였는지 안 움직였는지 시험하는 것이 부도덕한 것인가? 아이들 중에는 동생이 생기면서 퇴행을 하거나 아프다는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의 많은 경우가 엄마의 사랑을 놓고 동생과의 경쟁 관계에서 큰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시험하는 것이다. 비록 무의식에 이뤄지는 것이지만.
화목한 가정을 위해 사랑의 표현을 자주하라고 한다.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이것은 사람에게는 사랑에 대한 불안감이 기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불안감을 사랑의 표현으로 해소하는 것이 더 긍정적이겠지만, 좀 미숙한 방법인 사랑의 시험을 했다고 해서 많이 부도덕적인지 모르겠다. 사랑과 믿음이 깊으면 눈에 띠는 행동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심전심 以心傳心, 염화미소 拈華微笑로 표현될 수 있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깊은 의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미숙함을 거쳐 성숙함에 도달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적이 좋은 학생이 긍정이지만, 공부를 게을리한 학생을 (물론 본분을 다하지 못했으니 부도덕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많이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판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의 시험은 불행한 결말을 가져올 수다.’ 하지만 도덕은 결과로만 판단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랑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12)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브리서 11:17)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 (야고서 1:13)
성경을 살펴보면 ;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나 하나님의 시험은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긴 이야기는 욥기Job 자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할 수 있다. (당위성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할 이유가 없다. 창세 이후 사람은 불완전했고, 하나님은 완전했으므로. 순종이 리더십의 결과물인 것처럼, 사랑의 시험 여부는 관계의 결과물일 뿐이지, 당위성도 전제 조건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판단할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사람을 시험할 수 있다. 시험을 줄 능력자 권리자이시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것이니까. 나는 이 논리에 반론이 없다.
(우리 집에 <춘향전>이 없네. 분명히 읽으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