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425

 

책세상 출판 <이방인>의 독후감을 쓰고 다른 분의 감상문을 읽었다. 나는 내가 그 책을 읽지 전에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읽는 것은 꺼려한다. 감동마저 모방될 것 같아서. 여러 사람의 독후감을 읽었다. 알라딘에서 몇 편을 읽고 Yes24까지 건너가서 독후감을 읽고 왔는데, 거의 비슷하다. 느낀 바가 너무 달라 다른 분의 독후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이방인> 독후감에 관해서는 마치 내가 뫼르소나 이정서가 된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독후감에는 공감이 없을지언정 정오正誤가 없다는 것.

 

책세상 출판 <이방인> p166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책의 주제를 나타내는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하면 바로 위 문장을 고를 것이다. 뫼르소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세상이 또한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 투사projection다. 마지막 죽기 전에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면서 아직 투사된 세상에 관해서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으로 문학적 표현을 한다. 아직 완벽하게 마음에 문을 연 것은 아니다.

 

1) 많은 독후감에서 뫼르소를 소수자로 판단하고 있다. 이방인은 분명 소수자이다. 우리나라에 아프리카 원주민이 왔다면 그는 우리나라의 이방인이며 소수자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에서 ‘이방인’은 ‘적다’는 것보다 ‘다르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다르다는 점은 소통이나 교감이 이루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것은 ‘이인’으로 내가 읽은 감상에 맞은 제목 같다. 무관심-무감동-무기력한 사람, 뫼르소가 소수자인 것은 맞으나 다수-소수의 대립이 이 글의 주제라고 보기 어렵다.

 

2) 뫼르소는 감정이 절제된 것이라는 평가도 봤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감정의 분출을 억제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없었다. 어머니 장례식 다음 날 뫼르소의 행동은 슬픔 감정을 억누른 것이 아니고 슬픔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3) 뫼르소의 솔직한 태도, 자기 자신의 감정 그대로의 표현을 나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역시 자기 보호 본능과 감정이 결여된 상황에 이루어진 행동이다. 자폐증 환자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아이의 자폐증을 치료하여 호전되던 중 어느 날 아이가 거짓말을 하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끌어 안고 울었다. 거짓말을 한 것이 속상하여 운 것이 아니고 감격하여 운 것이다. 거짓말을 할 만큼 자폐증을 극복한 것이다. 거짓말, 배신 등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인지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속담에 동물을 배신하지 않는데, 배신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동물 배신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4) 뫼르소가 재판을 받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그리고 권력에 희생당했다는 감상을 봤다. 살인자에게 재판을 하고 형벌을 내리는 것이 부조리한 것인가?

 

5) 뫼르소가 자유롭거나 태양이나 자연을 사랑했다거나 관조적이란 표현도 동감할 수 없다. 뫼르소는 정방방위가 아닌 살인을 저질렀다. 이런 행동이 우발적, 우연이 아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 장례식 다음 날의 일들을 서술한 것이다. 어머니 장례식만큼 강렬하지 않지만 친구의 폭력행사에 대한 뫼르소의 태도에서 나는 그런 복선을 느꼈다.

 

솔직히 <이방인>이라는 책을 읽을 때는 쉽게 읽었는데, 다른 분의 독후감을 읽으면서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감상에 맞고 틀림은 없지만 내 판단과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비판적 댓글을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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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4-25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에선 다의성이란 특징 때문에 어떤 해석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쉽지 않은 것 같고,
게다가 다른 나라의 언어로 씌어진 작품에 있어선 번역이란 게 하나로 명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번역할 수 있으므로) 특정한 사람을 겨냥해 번역이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문제 같아요.
기존의 번역이든 새 번역이든요.

그냥, 독자들이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겠다, 정도로 인지하는 정도면 좋겠고,
누구의 번역이 틀렸다고 인지하게끔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마립간 2014-04-26 07:53   좋아요 0 | URL
pek0501님의 어머니 마음에서 나오는 포용성이 느껴지네요.^^

저는 기본적으로 플라톤-노자, 보수주의자로 평균적인 사람보다 옳고 그름에 얽매여 있습니다.

문학의 다의성을 저도 인정합니다만, A라는 문학작품의 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반면 (예를 들어 10개 정도) B라는 작품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적게 (예를 들어 3개 정도)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A 작품의 a부분에서는 정답이 없는 반면 b라는 부분에서는 한 가지 해석만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국어 시험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지요.

번역, 감상 모두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지만, 오역, 오답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에 관해서는 제가 언급할 입장이 아니고요. 감상에 관해서는 남이 틀렸다기 보다, 제가 틀렸나 (물론 제 스스로는 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검정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분의 독후감을 찾아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이방인'에 관해 독후감도 별로 없고, 내용도 비슷비슷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갖은 글은 하나도 없고.

페크pek0501 2014-04-2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왔어요. 생각해 보니 제가 몇 년 전에 <이방인>과 연결시켜 쓴 글이 있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 보시길...

http://blog.aladin.co.kr/717964183/4227695




마립간 2014-04-28 07:32   좋아요 0 | URL
새움 출판 '이방인'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연달아 두번 읽은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pek0501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겠습니다. 정상-비정상이란 것, 제가 반복적으로 옳고, 그름/다양성의 중간에 있는 용어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