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424
<이방인> 서평 별점 ; ★★★☆
나의 독서는 소설만 빼고 이루어지는 듯하다. <이방인>도 소설이고 독서의 동인動因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책세상에서 출간된 <이방인>(김화영 옮김)이 꼽혀있었는데, 내가 구매한 것은 아니다. <이방인> 번역 논란이 처음 있을 때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번역 논란이 처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알라딘 마을에서의 논란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논란이 있기 전에 <이방인>이 난해하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어려운 책이 한 두 권 있는 것도 아니고.) 논란으로 유발된 호기심은 김화영 번역본과 이정서 신번역본을 모두 읽어야겠지만 일단 집에 있는 책부터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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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에게 질문이 있냐고 물어 보셨다. 질문이 없다. 이런 상황의 해석은 내용이 쉽고 강의가 좋아 학생들이 너무 잘 이해를 했거나 아니면 질문할 만큼 강의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번역 논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하면 아직 읽지 않은 새움에서 출판된 <이방인>이 얼마나 가독성이 좋은지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책세상에서 출판된 김화영 번역의 <이방인>이 특별히 난해하게 번역되었거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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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내용에 집중을 해 보자. 이 책을 읽는 내내 인터넷에서 읽었던 기사(책의 소개로 fiction으로 기억되지만 정확하지 않다.)를 떠올렸다. 간단히 요약하면 ;
한 남자가 자동차 운전 중 여성을 치었다. 여성은 많이 다쳐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하지 못한다. 남자는 여성을 내버려두고, 집으로 갔다가 다시 사건현장으로 돌아온다. 현장에는 여성이 아직 살아 있었고 남자는 여자를 강간하고 이후 죽은 여자의 시체를 길가로 숨긴다. 남자는 범인으로 체포되었고, 경찰의 취조가 있었는데 여러 질문 중 마지막에 왜 죽어가는 사람을 강간했느냐 물음에 ‘어차피 죽을 사람, 그냥 죽게 놔두는 것은 낭비잖아요’라고 답했다.
위 글의 핵심은 ‘낭비’에 있다. 이성적 논리만으로는 범인이 말한 ‘낭비’에 대해 항변을 할 수 없다. 항변을 위해서는 논리 이외에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공감각이 필요하다.
내가 평생에 경계해야 할 것 5가지를 꼽는데, ‘무지無知’, ‘무례無禮’, ‘무관심無關心’, ‘무감동無感動’, ‘무기력無氣力’이다. 내가 이해한 <이방인>은 난해하지 않았다. 주인공 뫼르소에게 무관심, 무감동, 무기력이 있었을 뿐이다. (나 역시 이와 같은 성향이 있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까뮈는 실존주의자로 분류된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방인>은 이성만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이없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하면 나의 너무나도 편의적 해석일까? 위 5가지는 무책임, 무의미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적 적폐積弊때문에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이와 같은 때에 가수 이정씨가 분개했다고 한다. 나는 그 분개한 대상을 찾아보고 싶지 않다. 예능 방송 결방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과거에 9. 11. 사건 때 프로야구 결방에 불만을 터트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 있는 뫼르소이다. 뫼르소는 가해자이며 사회에서 적절하게 인간으로 양육되지 못한 피해자다.
궁금증 1 ; 살인 장면에서도 나오는 ‘두통,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함’의 묘사가 정신착란을 포함한 정신과, 신경과 영역의 질환을 암시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궁금증 2 ; 첫 발포 후 2~5번째의 발포에 간격을 두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로 해석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