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에 있어 진화의 압력
<예화>
# A의사 ; 저는 감기 즉 상기도 감염은 바이러스 질환이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습니다. 가능하면 약을 적게 사용하거나 환자가 이해를 한다면 약을 아예 처방하지 않기도 합니다.
건강 검진은 권하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건강 검진은 과잉진단을 할 뿐입니다. (책 <과잉진단>에 의하면 어떤 질환에서는 78%가 과잉진단이다.)
# B의사 ; 저는 감기 즉 상기도 감염은 바이러스 질환이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게 되는 것을 알지만,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스테로이드나 항생제를 포함하여 약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환자가 병원을 찾아 온 것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직장 생활등 사회생활을 해야죠. 항생제도 질환의 원인이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지만, 세균에 의한 2차 감염이나 염증을 방지하기 때문에 증상 호전에는 많이 도움이 됩니다.
건강 검진 권유도 의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조기에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을 치료하면 심장병, 중풍 및 이로 인한 사망을 줄일 수 있고, 암 질환은 조기에 발견 치료하지 않으면 완치가 되지 않습니다. 증상이 없을 때 진단받아야 초기 암을 진단할 수 있고 건강 검진은 꼭 필요합니다.
다음 3가지 질문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1) A의사와 B의사 중 어느 의사가 옳은가?
2) 우리 주위 의사 중에서 A의사와 B의사 중 어느 스타일의 의사가 많다고 생각하는가?
3) 1번 답변과 관계없이 나는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A의사와 B의사 모두 훌륭한 의사라고 생각한다. (압축된 글이지만,) 위와 같은 언급은 의학 지식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그에 따른 철학적 관점까지 갖춘 의사이다.
사물은 다양한 면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면에 대한 관점에 따라 가치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다.
p******님께서 내가 주신 글이다.
니체가 한 말 -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 애들이 다툴 때조차도 누가 더 옳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면에서 보면 누가 옳고 저런 면에서 보면 누가 옳고 그렇죠.
내가 p******님께 드린 답변이다.
저는 '모든 일이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에 동의하지만, 선택은 있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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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화에서 제시한 내용과 질문에 어떤 선택을 했는가? 1), 2) 질문에 어떤 분은 A의사를, 어떤 분은 B의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2) 질문의 답에는 B의사를 선택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의 착각인가?)
B의사 스타일이 많다는 것은 의사 집단이 옳지 않다거나 부도덕한 것과 거리가 멀다. 사회에서 주어지는 (진화론적) 선택적 압력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p94 대부분의 질병은 스스로 제한하는 셀프 리미팅self-limiting이 있어 저절로 소멸한다. 그럼에도 환자는 항생제 주사를 맞은 후 병세가 호전되는 느낌을 받으면 항생제가 치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음에도 병세가 호전된 것이 항생제 주사 덕분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병세 호전이 의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독감에 걸린 환자가 의사를 찾아갔다가 아무 처방도 받지 못한 체 돌아왔는데, 얼마 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면 환자는 의사 덕분에 병이 나았다고 추론하지 않는다. 이때 환자는 의사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을 고마워하기보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병이 나았지만 다음에는 다른 의사를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위 글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인데, ‘인도’에서의 상황으로 추정되지만,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기제가 작동한다. 어떤 마을에 A와 B라는 두 의사가 있을 때, 환자는 B의사에게 몰린다. 후배 의사들은 병원의 경영을 보고 B의사를 닮으려 할 것이다. A의사는 경영난으로 폐업을 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A의사 (스타일)는 (진화론적으로) 퇴출된다.
의사가 B형 간염 보균자에 대해 정기적인 초음파 검사를 하지 않은 사이에 환자가 간세포암이 발병해 사망했다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 (2009가합122819)/ 2009년 4월에 간세포암으로 진단받았어도 사망의 결과를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간암 조기발견 기회를 놓친 데 대한 정신적 손해만을 인정했다.
위 판결은 간암 선별 검사가 별 효용이 없음에도 의사에게 책임을 물은 판결이다. A의사는 도덕적으로 훌륭할지 모르나 위법적인 요인을 안고 가는 것이다. (나는 이 판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일명 보라매 병원 판결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정도 차이가 아니겠냐. 하지만 그 정도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cut-off)에 관한 과학적인 근거를 본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