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30607
<쎄느강은 좌우로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서평 별점 ; ★★★
이 책은 수학에 관련된 부분만 읽었던 책인데, 어느 분에게 이 책을 언급하면서 책 전체를 읽었다. 몇 전에 읽었으면 느낌이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프랑스 사회의 가치관에 장점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카뮈와 샤르트르에 대한 비교가 있다. 둘 다 실존주의자이지만 (노벨상을 언급하면서)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샤르트르는 거의 순수에 가까운 신념 윤리자다. 까뮈, 역시는 책임 윤리보다 신념 윤리에 가깝지만, 신념 윤리에 약간의 책임 윤리를 가미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나는 과거에 거의 순순한 신념 윤리를 지향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책임 윤리가 조금씩 자리 잡았는데, 샤르트르와 까뮈의 중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무엇이 옳은, 아니면 좀 더 나은 가치관일까?
p 251 사회정의가 질서에 앞선다.
나는 당연히 사회정의가 질서보다 앞서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생각할까?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밀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너무 배가 고픈 것의 고통이 크면, 어떤 사람은 배부른 돼지를 택할 수도 있다고.
* 밑줄긋기
p 47 나는 당신들을 이해했습니다.
p 48 카뮈 ; "조국을 배반할 수 있으나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를 배반 할 수 없다."
p 53 민족 모델인가, 개인모델인가?
p 121 체제가 무너졌는데 과거의 프로피퇴르profiteur들이 거의 대부분이 계속 프로피퇴르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동구나 러시아의 노멘틀라투라들 즉 과거 공산당의 간부들과 정부의 관료들이 스스로 변신하여 시장 경제 체제로의 전환에 재빨리 적응하였다.
*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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