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결심에 관하여

 

 순오기님께서 댓글을 다셨고 추가 설명이 제 서재를 방문하시는 분께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씁니다.

 

 그것을 듣기 전까지 저에게 새해 결심은 1월 1일에 결심하고 잊어버리는 것, 잘 하면 일주일이나 10일 정도 유지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어느 방송 코메디에서 새해 결심을 거창하게 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적도 기억이 납니다. 배일집이 새해에는 운동을 하겠다. 배연정은 가계부를 쓰겠다. 담배를 끊겠다. 등

 

 젊은 시절에 1년은 꽤나 긴 시간이고 1월 1일 또는 3월 1일을 기점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따라서 새해 결심으로 무엇인가 거창하고 굉장히 의미있는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공중파 방송에서 성탄절, 새해 특집도 유별났을 때입니다.

 

 그러던 중 제가 대학생 어느 때인가, 연말이었는데 (아마 라디오로 기억되는데, 아니면 TV나 신문일 수도 있음) ‘새해 결심은 거창한 것으로 하지 마라’라는 내용을 듣게(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듣는 순간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뒤에도 이야기가 지속되지만 이후 이야기는 기억에 남지 않고) 그 ‘새해 결심은 거창한 것으로 하지 마라’라는 내용이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후 새해 결심으로 사소한 것을 하기로 하였고 1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번 결심을 1년간 지속한 경험을 가지니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주위에 새해 결심을 1년간 지속한 사람을 볼 수 없을 때였는데, 저는 해낸 것입니다.

 

 그 다음 해의 결심으로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는 것을 새해 결심으로 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과는 시험을 잘 못 보면 낙제가 있는 과였기 때문에 시험에 관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병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에 변비의 대부분의 원인이 ‘습관성 변비’라고 나와 있어 ‘배변 습관을 일정하게 하자’라는 새해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새해 결심은 직업병으로 얻은 발무좀(쑥스럽네)에 무좀약 매일 1년간 바르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장갑을 끼고 다니기도 있습니다.

 

 체중을 감량하고 싶을 때, 체중을 빼겠다고 새해 결심을 하면 대개 지키지 못합니다. 그 대신에 ‘저녁 8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않기’나 ‘커피와 같은 emptying calorie가 높은 음식 섭취하지 않기’를 먼저 새해 결심으로 한 후, ‘가볍게 운동하기’를 추가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보다 저녁에 일찍 자기가 훨씬 더 실천하기 쉽습니다. 인체는 하루 주기가 25시간 정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신체 리듬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 일찍 일어나게 마렵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정도의 의지는 아니지만 졸렵지 않더라도 잠자리에 드는 의지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을 때, 잠자리에 일어나는 의지 정도는 필요합니다.

 

 책을 읽는 습관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결심보다 ‘술값보다 책값을 더 쓴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시간과 돈이 자연히 책으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아주 큰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3개월 정도 지속하기 쉽고 일단 3개월을 넘기면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1월에 결심한 것이 잘 지켜지면 4월에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체중감량과 같은 것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결심을 했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결심의 조건을 대폭! 완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폭 완화했기 때문에 ‘이정도 결심을 해서 무엇하나, 하지 말자’라는 유혹을 견뎌야 합니다. 너무 완화되었다고 생각되면 3개월 정도 지속한 뒤 조금 강화하면 됩니다. 저는 작심삼일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3일 정도는, 실천해 보고 이 결심이 실천이 가능한지 테스트 해보는 기간이다.

 

 이런 해도 있었습니다. 만만한 새해 결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새해 결심은 ‘새해 결심이 없는 것이 결심이다.’ 한 달 정도 지난 1월 말이 되니 올해는 이것을 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해의 새해 결심은 1월 말에 결정되었습니다.

 

 순오기님이 제 새해결심의 대부분이 연말까지 지속되는 것이 놀랍다고 하셨는데, 제 의지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연말까지 지속할 만한 것을 새해결심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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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1-0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보충 설명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래도 연말까지 지속하는 건 대단하고 칭찬받을 만해요.

마립간 2012-01-04 07:48   좋아요 0 | URL
생각의 전환이죠. 새해결심이 연말까지 지속되지 않는 것은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잘못된 것이다.

순오기 2012-01-06 06:05   좋아요 0 | URL
하하~ 실천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잘못된 결심이 문제로군요.^^

마녀고양이 2012-01-0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데요.
저는 1월 1일이라고 해서, 계획 같은 것을 잘 하지 않아요.
새해 결심은 잘 지켜지지 않더라구요. 사실 결심을 잘 지키지 못 해요.
그때마다 필요해서 하는 스탈이라서,, 전 제가 계획적인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필요에 의해서 계획적인 스타일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

8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말기, 이거를 딸아이와 같이 해야겠어요. 1년간, 1년간. ^^

마립간 2012-01-04 17:14   좋아요 0 | URL
Up-grade! 필요할 때, 결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업그레이드된 것이죠. 꼭 새해일 필요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