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이론은 없다 - 거꾸로 보는 현대 물리학
마르셀로 글레이서 지음, 조현욱 옮김 / 까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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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로 분류되어야 할 책
- 과학서의 탈을 쓴 문학서

 
이 책의 제목은 매우 도발적입니다. 그 만큼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글쓴이 개인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포함하여 물리학이 발전과정을 보여 줍니다. 간략하면서 쉽게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던 중 p 167부터 무엇인가 불편한 느낌을 줍니다. (어떤 조짐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p 198부터는 글쓴이의 의견의 감정이 본격적으로 표출되는데, 읽다 보니 이것이 과학 서적이야 수필집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알라딘 별점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역시 한 개, 두 개)

 
내용의 반론입니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바는 ‘최종 이론은 없다’입니다. 최종 이론은 증명된 것이 아닙니다. 없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연구 중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새로 제시된 자료 없이 어떻게 과감하게 ‘최종 이론은 없다’고 주장하며 책 제목으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쓴이가 제시한 근거는 비대칭성입니다. 우주의 발생이 비대칭성이 있고, 4개의 힘에 비대칭성이 있고, 생명에 비대칭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최종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칭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쓴이도 마릴린 먼로의 점에 비유했듯이) 대칭이 아름답기도 하고 비대칭이 아릅답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하얀 백지 스케치 북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림이 그려집니다. 백지는 대칭성이 있고 낙서가 된 것 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그려진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글쓴이가 만물의 이론, 최종이론 등의 명칭에 얽매여 있는 것 같습니다. 만물의 이론은 만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최종이론이 밝혀지면 학문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데 사람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위와 같은 명칭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 같은 최종 진리가 존재한다고 그토록 간절하게 믿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필요가 없지요. 연구적 열정을 위한 필요를 제외한다면. 글쓴이는 필요와 희망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에 가설, 어느 정도 증명된 이론, 법칙, 추상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추상적인 진리는 신에 영역에 해당하거나 플라톤의 이데아이거나 글쓴이가 비판하는 전일성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수준에서는 가설의 영역에 있는 것을 증명된 법칙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할 뿐입니다. 목표가 필요할 뿐입니다.

* 새로 정리된 문제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287045
* 철학의 끝없는 물음 http://blog.aladin.co.kr/maripkahn/2993217

 수학과 과학에는 그릇된 목표로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그 과정과 결과물이 과학적으로 남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연금술에서 화학이 발전했고, 점성술에서 천문학이 발전했습니다.

 
주장을 하지 말고 증거를 달라고!

* 밑줄긋기
p 23 일어난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이 스스로 엉켰다. 여기서 삼위일체는 공간, 시간, 물질이다.
p 24 원형우주 prototype universe, 다중우주 multiverse, 메가우주 megaverse ; 몇몇 현대 이론들은 다중우주는 영원하고 그래서 원인없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p 26 과학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틀, 원리와 법칙이라는 골격이 필요하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무엇인가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이들 법칙은 검증된 범위를 넘어서까지 타당한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흔하다.
p 99 내가 앞서 썼듯이, 검증될 수 없는 물리 이론 - 혹은 검증 가능성의 영역에서 항상 벗어나 있도록 편리하게 조정될 수 있는 이론 - 은 과학의 정전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p 115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없다./물질과 복사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간은 할 수 있다. 이것을 금지하는 물리 법칙은 없다.
p 263 지금까지로 보아서는 물질의 근본적 비대칭성과 생명의 비대칭성 사이에 아름다운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해답일 듯싶다.
p 292 우리는 신화적인 보물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 없이도 대양을 탐사할 수 있다.
p 300 우리는 물리학의 두 가지 표준모형, 즉 물질의 기본 입자를 다루는 모형과 빅뱅을 다루는 모형이 상당히 큰 숫자(약 30개) 의 자유 상수에 의존하고 있음을 안다. 자유 상수에는 전자와 쿼크의 질량과 전하, 힉스 입자의 질량, 우주내의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양,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의 양/자연의 기본 상수 ; 빛의 속도, 중력 상호작용의 값을 정하는 중력상수 그리고 양자 효과의 크기를 정해주는 플랑크 상수 h 등이 그것이다.
* 반론 밑줄 긋기
p 291 정말로 의심스럽다. ; 이 의심에 한편으로 수긍할 수 있으나 이 의심이 뒤에 가면 근거 없이 확신으로 바뀐다.
p 291 즉 우주가 요행의 산물이라면 우리의 목적 관념, 의미 탐구의 방향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 그렇지 않다. 요행을 증명하면 된다.
p 292 오히려 유일무이한, 최종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우리의 고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 탐구를 지연시키고 있는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 연금술은 화학을 발전시켰다. 별로 지연시키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지연시키는 증거를 대지 않고 있다.
p 297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발견되어야 할 진리, 창조뒤에 있는 원대한 계획 같은 것은 없다는 점이다. ; 없다는 것을 주장하지 말고 증명하거나 지지하는 증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증거없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p 302 이것은 우주에 따라서 각기 다를 수 있다. ; 저자의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우리 우주의 자유상수를 구하고 다른 우주에는 왜 다른 자유상수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할 수 도 있다. 또한 그 복잡도가 극도에 다해 미처 다 설명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실재로 3체 진자는 존재하지만 3체 진자를 설명하는 방정식은 없다. 마찬가지로 최종 이론은 없거나 있어도 한 참 후에나 발견될 가능성도 높다.
p 304 우주가 생명에 꼭 맞다. ; 우주의 최종이론과 생명 현상에 대한 것을 혼동하고 있다.

cf ; 교회에서 목사님이 무신론적 과학자를 비판하는 방식은 과학자가 종교를 비판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저를 포함하여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주종자이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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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4-1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문학에 분류되었더라면 별2개
역주는 굉장히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