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여류시인
* 어느 여자 분
Emily Dickson에 관한 글을 쓰고 나니 어떤 여자 분이 생각납니다.
(15년전쯤 이야기) 첫 만남은 그녀가 건물 14층에서 13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저에게 부축을 해 달라고 부탁을 받은 것입니다. 부축해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편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는데,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많아 타지를 못했고 더 이상 기다리기 싫다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들이 있는 방을 방문했을 때인데,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녀 ; “엄마, 너무 힘들어요.”
그녀의 어머니 ; “힘이 들면, 잠이라도 자지 그러니” (한낮이었습니다.)
그녀 ; “이제는 잠도 하도 자서 잠이 오지 않아요.”
그녀의 어머니 ; “그래도 잠을 자려고 해 봐. 잠을 자면 그래도 편하잖아.”
세 번째 만남은 만나게 된 경위, 장소 등은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그녀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었습니다.
마립간 ; “뭐 하셨던 분이세요.”
그녀 ;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대기업에서 일한 적도 있고 중소기업에 일한 적도 있고 그 일 너무 잘해 상을 받은 적도 있고...”
제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2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녀는 1형 당뇨병으로 어렸을 때부터 당뇨병 치료를 받았고 20대를 넘어서면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와 두 번째 만남이 있던 그 당시도 생사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두 번째 만남 후 그녀가 보이지 않아 저는 그때 그녀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녀의 질병이 그녀를 강하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경력이 죽 이어져 왔다면 업계에서 거물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제가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는 두 번째 만남에서 엿듣게 된 대화 때문입니다. ‘삶’은 그 자체로 살아갈 당위성을 갖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고 하셨지만 그 당시 그녀는 그냥 살았을 뿐입니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2-3년이 지난 후 인공신장실 간호사에게 그녀에 관한 소식을 물으니 저와의 만남이 있은 후 몇 달되지 않아 사망하였습니다.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시집의 서평을 쓰다가 생각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