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사과가 문제인가, 썩은 상자와 그 제조자가 문제인가...
* 책을 읽은 후의 감상문을 독후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책을 받은 후, 책을 읽기 전의 감상문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어제 <루시퍼 이펙트>라는 책을 받았습니다. 처음 책을 소개 받은 것은 ‘로쟈’님의 서재에서 보았는데, 구입하고 싶은 책이지만 조금 가격이 나가는 지라 할인 폭이 확대되면 구입하려했습니다. 그러던 중 ‘글샘’님의 서평을 읽고 나서 참지 못하고 구입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미디어에서 소개받은 후 오랜 논쟁의 주제임을 느꼈습니다. 바로 인품(대개 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이란 것이 ‘선천적인 것이냐 후천적인 것이냐’의 논쟁입니다. (확장된 의미의 보수-진보 논쟁의 하나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둘 다 의미 있게 중요하지요. 이것을 놓고 논쟁하는 것은 ‘원뿔을 갖고, 밑을 보면서 원이 이 입체 도형의 본질이다(원). 옆에서 보면서 삼각형이 본질이다.(뿔)’고 논쟁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타임 패러독스> p42 오늘날까지 나를 이끈 것은 천성과 교육의 독특한 조합이었다.
저의 유년 시절 (1970년대)는 후천적 요인이 중요시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 학술 분야의 정확한 유행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때 그렇게 느겼습니다.) 당시에 유행했던 글중 하나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다.’였습니다. 비교되는 선천적 요인이 중요시 되던 시대는 1940년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시대인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치의 왜곡, 그리고 악용의 사례죠.) 그러나 1990년 후반부터 선천적 요인을 중요시하는 책들이 발간되었습니다.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도덕의 정치>, <빈 서판>, <인간 본성에 대하여> 등. 이제 후천적인 것에 중점을 두는 분들의 반격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쁜 의미로서의 반격이 아니라 균형을 위한 반작용을 뜻합니다.
딱딱한 상자에서 사과가 썩었습니다. 상자에 푹신한 솜과 같은 완충할 수 있는 것을 넣었다면 썩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환경을 아무리 좋게 해도 사과沙果가 배梨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북이를 훈련시켜 토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달리기보다는 수영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자신의 자녀 교육을 돌아보시길), 또한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사과를 썩지 않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곤란한 점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괴짜 경제학>에서 저자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이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흥미롭습니다. 이 책이 과연 저에게 어떤 감동을 주게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