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쓰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출근하자 기본적인 것을 점검하고 아침 회의 40분 내외, 이후에 약 20분 내지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고 이 시간에 대개 간단한 영어 공부, 또는 고전 음악 감상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이 여유로운 시간이 요즘은 책 읽는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서평단 때문입니다.)

 책을 받기 전에 서평단 카테고리에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책 제목을 확인하였습니다. 문득 떠오른 것은 ‘독서치료’였습니다. 독서치료는 2001년 김현희 (전 한국독서치료학회장) 선생님의 소개 글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참조 조선일보 2008년 11월 18일자 기사 ‘소심하고 고집 센 우리 아이, 책을 고쳐볼까’ ; 오선영 기자) 자폐아Autism를 위한 놀이치료, 미술치료는 들어 보았는데, 독서 치료라니. 그런데, 이제 글쓰기 치료까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회의 이후의 여유 시간에 <치유하는 글쓰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문을 읽고 p20에 들어서 ‘여유(아마도 가명인 듯)’님 쓰신 글을 읽기 시작하는 p21을 채 읽기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닦고 다시 읽다가 다시 눈물을 흘리고 다시 읽고. p24까지 읽지 못하고 업무를 보러 나갔습니다.
 오전 근무 중 어느 한 분이 ‘마립간님, 어제 술 드셨어요?’ 물었습니다. 저는 ‘아뇨, 왜요?’ 그분은, ‘얼굴이 부어있어서요.’
 대학생 시절, 도서관에 공부하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조용히 엎드립니다. 남자가 눈물 흘리는 것이 창피거나 놀림 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설명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친구들은 너무 자서 얼굴이 부었다고 했습니다. 한번인가 두 번인가는 같은 학과 동기인, 그리고 민감한 여학생이 눈치를 챈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왜 우냐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여유’님의 글을 읽은 후 저에게는 그 뒷부분은 꼭 읽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미 뒤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느꼈으니까요.

 왜 제가 울었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지난날 어려운 생활을 하신 부모님이 생각났거나 소통의 어려움을 느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 세대는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유년시절이 일제 치하거나 한국동란으로 끼니조차 어려웠으니까요. 1980년부터는 아버지가 질병으로 직장을 그만 두신 이후 어머니께서는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마침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셔서 할머니 간병까지 하셨습니다. 오전에 직장에 육체노동의 근무하시다가 점심시간 잠깐 집에 오셔 김장을 담그시기도 하고, 아니면 할머니가 배변한 것을 치우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직장으로 일하러 가셨죠. 그래도 집안 분위가 우울하거나 어둡지는 않았습니다. 식사를 거르거나 학교를 못 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죠.

 
제가 소통의 상처를 갖게 된 것도 집안 분위기와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동년배 친구들과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힘들 때 손을 뻗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을 때, 부모님이 힘드신 것을 알고 손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손을 내밀었을 때 부모님이 손을 잡아 주지 못했으면 분명히 상처가 더 컸을 테니까요. 그 당시 상황은 그랬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책으로 부터 나왔습니다. 독서를 하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고, 소통의 부재로 저보다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경제적으로 고통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풍요로운 세대였습니다. 단지 저와 공감하는 사람이 수십년전 사람이거나 수백년전 사람, 아니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사람과 교류가 확대되면서 어떤 믿음이 생겼습니다. 150명 정도가 모인 집단이 되면 분명히 소통이 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몇 년후 군 입대를 하였고 훈육대는 135명의 후보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훈련 기간 중 한 사람과 소통이 되었습니다. 저의 근거 없는 믿음을 확인시켜 주었지요. 이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까지는 그 이후로도 1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세월이 약이다.’ 말처럼 첨차 치유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기 직전 지금의 안해(아내)와 대화하면서 10년에 걸쳐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것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는 10년, 아니면 20년 후의 저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그 뿌리 깊이 박힌 그리고 질긴 쓴뿌리와 세월의 마모속에 어느 것이 더 우세할지. 몇 알라디너가 떠오릅니다. 마음 상처를 독서로 쓰다듬던 그리고 지금은 서재가 폐쇄된 AAA AAA^^님,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서재에서 공개했고 지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계신 BBBB님, 가끔 어머니 생각에 울다가 서재에 글을 남기시는 CC님.

[치유하는 글쓰기]의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개인적으로 딸 '누고'에게는 조금 더 잘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맥락과 분야가 다르지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마음에 상처가 있는 분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p32 만약 판도라가 겁에 질려 상자를 닫아버리지 않았다면 그 상자의 마지막 메세지인 희망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상자에서 쏟아져 나오는 추한 것들을 끈기 있게 지켜보면서 빛과 그림자를 통합해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성경>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It was good for me to be afflicted.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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