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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내에게 찾아온 행운
슈테판 슬루페츠키 지음, 조원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평점 :
도서관에서 책을 발견했는데, 낯설지 않은 그림체에 호감을 가졌다. 알고 보니 전작 "노박씨 이야기"를 보았던 탓이다.
이번에도 파스텔 톤의 다정다감한 그림인데, 그와 달리 이야기는 풍자 형식이어서 아기자기 그림과는 솔직히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조화를 작가가 노린 건지도 모르겠다.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아주 참신하거나 독특하지는 않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인데, 다만 어떻게 재포장을 했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허영심 많은 여친이 질투심 많은 남친을 이용해서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는 이야기인데, 그녀의 그 수법은 오래 가지 않으니, 남친이 여친을 갈아치운 것.
이 이야기가 재밌었던 것은, 극중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대충 자기가 따라 그려서 진품인 척하는 장면 때문인데, 피카소의 그림을 대강 떠올려보면 왜 재밌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주인공의 대사, "내가 따라 그릴 만 하군...."
네번째 이야기 야성의 부름도 재밌었다. 모험을 즐기는 슐로츠키 백작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신문에서 눈길을 끄는 기사를 발견한다. '다큐멘터리를 찍던 카메라팀, 원시림에서 실종'
그의 도전 정신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건 당연했따. 그는 오지의 잔혹한 낙원으로 바로 출발한다. 정글을 헤매던 그는 원시인들의 북소리를 들었다. 파푸아 족의 전사들이 우르르 나타나 그를 에워싼 것. 순식간에 그는 체포된다.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번진다. 이제야말로 소원을 이루겠군! 시원의 인류에게 다가가는 놀라운 귀향. 그는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이다. 행복감에 무아지경에 빠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오오 그래, 나를 찔러라, 고귀한 원시인들아! 놀라운 식인종들아! 내 숭고한 운명을 완성해다오. 본능대로 살다 가는 너희 원시인들아! 내 심장을 찢어발겨라. 내 살 한 점, 머리카락 한 올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워라. 복 받은 너희의 뱃속에서 나는 녹아 사라지고 싶구나. (생략...)
그때, 갑작스레 마을 전체가 정적에 잠겼다. 원시인들이 모두 얼빠진 표정으로 추장과 백작을 바라본다. 이 때 숲속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린다.
"캇! 캇! 카메라 스톱! 이런 제기랄! 어디서 이런 멍청이를 잡아온 거야?"
허헛, 백작의 얼빠진 얼굴이 상상된다. 그는 촬영 팀에게 잡혀온 것. 얼마나 리얼했으면 촬영현장인 것을 몰라봤을까. 장엄한(?) 일장 연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마지막 문장이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추장 왈, "우린 잘못한 거 없어. 어쨌든 약속한 대로 달러는 줘야 돼!"
하핫, 이렇게 두편만 재밌었다. 별 셋을 줄까? 하다가, 그래도 재밌는 게 두 편있었으니, 별 넷으로 반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