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금융소비자 권리찾기 ①금융서비스 양극화

IMF 구제금융 이후 국내의 금융환경은 대단히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탓에 현재의 금융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도 있고, 은행의 지나친 장삿속을 접하고도 과거의 기억만 떠올리며 쉽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누려야 할 금융서비스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한겨레엔>과 <(주)에셋비>가 공동으로 ‘금융소비자 권리찾기 캠페인’을 벌이려고 합니다.

식당에서 지불하는 돈 만큼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처럼,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서도 우리는 지불하는 비용만큼 서비스를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캠페인은 앞으로 두 달 정도 진행됩니다. 캠페인 기간동안, 소비자로서의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독자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편집자주

김 대리, 차이나펀드에 가입하다

직장생활 5년차인 건설회사 대리 김시형씨. 붓고 있던 적금이 만기가 돼 새로운 저축 수단을 고민하게 됐다. 현장에 나가랴, 부서 잡일 처리하랴 정신없이 사는 김 대리에겐 신문의 재테크면은 그야 말로 남의 일이었다. 김 대리는 이참에 적금 대신 적립식 펀드에 가입해 재테크에 눈을 떠보기로 했다. 사무실 동료 중에 적립식 펀드 하나쯤 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 분위기 탓도 컸다.

오전 10시, 은행 창구에는 대기하는 고객이 4~5명 뿐이어서 한산했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순서를 알리는 벨이 울리지 않는다. 창구를 살펴보니 분명 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은 4명인데,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은 2명뿐이고 나머지 직원들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10분이 넘어가면서 슬슬 짜증도 나고, 사무실 비운 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김 대리가 창구에 앉기까지는 정확히 30분이 걸렸다.

마음을 추스린 뒤 창구직원에게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직원은 친절했다. 곧바로 중국 관련 해외펀드가 인기라며, 한 증권회사 펀드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펀드가입은 처음인데, 괜찮은 상품이냐”고 물었더니 “조만간 중국이 올림픽을 하게 되는데, 높은 수익을 기대해도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것저것 묻고 싶긴한데,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알아서 좋은 상품을 추천했겠거니 생각하며 권하는 대로 여기저기 사인을 했다. 김 대리는 달랑 통장 한 개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펀드가입에 들어간 시간은 10분 남짓 걸렸다.

박 과장, 은행에서 퇴자를 맞다

카드회사에 다니는 박아무개(40)씨는 얼마전 은행 창구에서 얼굴이 빨개지는 경험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아침 출근길에 내민 2만원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 동안 용돈을 아끼고 아껴 모았으니, 내 통장에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딸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만해도, 아이의 행동이 대견해 출근길 내내 기분이 좋았죠.” 박과장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 회사 1층에 있는 은행을 찾았고, 10분여를 기다린 끝에 통장 사이에 ‘곱게’ 끼운 2만원을 창구 직원에게 내밀었다.

“고객님, 4만원 이하는 입금이 안되는데요.”

박 과장이 왜 그런지 물었지만, 창구직원은 “원래 이 통장은 입금이 4만원 이상”이라는 짤막한 대답만 돌아왔다. 통장 어디에도 그런 안내 문구는 적혀 있지 않았다. 2만원을 더해 입금을 하자니 사무실에 지갑을 두고 나온 게 생각났고, 아이 교육을 위해 만든 통장인데 부모가 돈을 보태주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혼잡한 점심시간이라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은행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통장을 만들어준 아내에게 물어보니, 1년에 50만원 이상을 자유롭게 입금하면, 아이의 보험혜택을 주는 통장이라고 했다. 아내는 “아무 때나 액수와 상관없이 입금하면 되는 줄 알았지, 한 번에 4만원 이상인 줄은 나도 몰랐다”고 했다. 50만원 이하 예금은 이자를 주지 않듯이, 예금액이 작은 어린이통장도 사실은 은행 창구에서 ‘찬밥’ 신세였다.

조 사장, 은행PB 3명에게 추석 선물을 받다

대형식당, 골프연습장, 상가건물 등 수백억대 자산을 갖고 있는 조사장은 지난 추석 때 거래가 있는 은행 3곳의 PB(프라이빗 뱅커)들에게 선물을 받았다. 와인이나 한과 등이었지만, 조 사장에게 이들은 재산관리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일러주는 좋은 ‘조언자’ 역할을 한다. 수시로 공연 초청이나, 골프 초청이 올 뿐 아니라, 은행 창구를 찾지 않아도 전화로 언제든 금융거래를 조언받는다. 불가피하게 은행을 찾을 경우에는 별도의 VIP룸을 통하기 때문에 거래는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은행들이 ‘부자고객’의 자산관리까지 해주는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금융서비스의 양극화는 이제 일상적인 관행이 돼버렸다. 과거엔 은행원들 스스로도 공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고, 서민들도 은행을 준 공공기관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의 은행들에게 남은 건, 치열한 수익률 싸움과 처절한 생존경쟁뿐이다. 어린이통장 때문에 박 과장이 격었던 ‘굴욕’ 역시 이런 은행간 경쟁의 희생양이다. 4만원 이상으로 입금을 제한한 것은 ‘창구를 찾는 소액 예금자를 최대한 차단해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은행의 계산된 규정이다. 어린이 금융교육에 앞장서겠다던 은행들이 하나둘씩 어린이 통장 상품을 없애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은행들은 대신 수수료가 많은 ‘어린이 펀드’를 앞다퉈 판매하고 있다. 어린이 금융교육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은행들은 기본적인 입출금과 예금, 이자부터 가르치는 게 아니라, 투자부터 가르치는 셈이다.

최근 은행들은 이처럼 원리금이 보호되는 예·적금 상품 판매보다 수수료 수입이 큰 간접투자상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고객한테 받은 수수료로 금융서비스를 확대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 상품은 원금손실도 감수해야 하는 상품이지만, 고액의 자산가들에게 제공되는 친절한 금융서비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고객들은 최소한의 친절한 설명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서비스의 양극화는 서민들의 효율적인 재무설계를 어렵게 하고, 양극화의 골을 더 깊게 파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다시 김 대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김대리가 은행에서 받은 금융서비스는 ‘친절’밖에 없다. 오래 기다렸을 뿐 아니라, 금융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었다. 김 대리는 그날 간접투자 상품 중에서도 대단히 어렵고 위험할 수 있는 해외펀드를 가입했다. 해외펀드는 수수료도 국내펀드보다 많아 충분한 서비스를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투자 설명서도 못받고 통장만 하나 달랑 받아 돌아온 것이다.

은행 입장에선 은행수익에 크게 기여하는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은행의 수익중 수수료 수입이 차지 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비단 돈 많은 고액자산들 덕만은 아니다. 김대리가 가입한 해외펀드를 통해서도 은행은 적지 않은 수수료 수입을 거둔다. 매월 50만원씩 붓기로 한 김 대리가 3년 동안 이 펀드에 적립할 돈은 1800만원이다. 연간 10%의 수익을 낸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김 대리가 내야 할 수수료(2.7%)는 3년간 56만7천원이나 된다.

은행들이 일반 고객들에게 상품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입 이후 관리는 더더욱 하지 않을 동안, 고액자산가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놀라운 수준이다. 한 시중은행 PB는 “사실 고액자산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고 쓰는 판촉비 규모와 이들에게 받는 수수료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적자”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거액을 들여 외국의 명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벌이는가 하면, 수시로 재테크 강연과 고급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근엔 고객 자녀들을 위한 고급 맞선파티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도움말 제윤경 에셋비 교육본부장 jykkto@hanmail.net

금융소비자 권리찾기 캠페인 설문조사- 금융기관 이용실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6-11-0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자는커녕 통장 잔고가 일정액이 못 미치면 유지비가 몇천원씩 빠져나간다. 그때가 언제부터였더라? 일년은 넘은 것 같은데...
한번은 통장을 새로 개설하려는데 최초 입금 금액은 7만원 이상이라고 했다. 내가 만원을 내밀자, 은행 직원은 재치있게도(?) 7만원을 입금했다치고 6만원을 바로 뺀 것처럼 만들어서 통장을 건네주었다지.. 아, 그때 너무 황당해서 그 은행 다시 안 갔다...;;;; 가만, 그 돈은 우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