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t (www.magazinet.co.kr)에 올린 글입니다.


 “자신에 대해 정직하라. 당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라.” 병희(고현정)는 어떤 책에 적힌 음란물에서 벗어나는 법을 중얼거린다. 하지만 MBC <여우야 뭐하니>의 나이든 사람들은 정직하지도, 문제를 인정하지도 못한다. 병희는 실수로 하룻밤을 보낸 친구 동생 철수(천정명)의 손길에 마음이 설레면서도 그가 ‘남자’가 아닌 ‘영원한 베이비’라 말하고, 명품 브랜드 사장 병각(손현주)은 모델 준희(김은주)에게 집착하면서도 노는 것일 뿐 사귀는 것이 아니라 말하며, 순남(윤여정)의 심장이 떨리는 건 근 스무살 어린 자신의 부하직원 필교(박병선)때문이지만, 그는 자신이 커피를 마셔서 심장이 나빠졌다고 믿는다.

 

 그건 그들의 환타지와 그들의 현실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병희는 남자와의 로맨틱한 첫경험을 상상했고, 병각은 준희가 아닌 준희와 닮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순남은 오드리햅번의 영화같은 연애를 꿈꾼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가온 상대는 같이 걷기만 해도 조카로, ‘스폰서’ 관계로, 불륜 관계로 생각될 ‘베이비’들이다. 그러나, 병희가 자신을 일반적인 남성잡지 기자로, 명목상일 뿐이라도 기자가 아닌 편집장이라 속여도 그가 천대받는 음란잡지 기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듯, 병희가 아무리 부인해도 그의 마음속에 철수가 들어온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드라마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다니는 여자고, 내 남자친구는 희명(조연우)처럼 어디 내놔도 번듯한 남자가 아니라 술마시고 대문앞에서 찌질거리는 남자라는 현실. <여우야 뭐하니>가 불편하다면 그건 노골적인 성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남들 앞에선 고귀한척 했던 성마저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추레한 일상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음란물은 감추기 때문에 음란”하고, 음란잡지 기자인 것은 “창피한 일”이니 창피한대로 받아들여야 오히려 괜찮다는 희명의 말처럼, <여우야 뭐하니>는 그렇게 환타지로 도망가고 싶은 하찮은 현실이라도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라고 말한다. 모성으로 포장된 어머니대신 어머니에서 은퇴하고 여자로 살겠다고 선언하고 싶은 중년 여성의 현실, 겉모습은 슈퍼 모델이지만 패션쇼에서 내려오면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 재능없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스물다섯살 여성의 현실.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야 연애다운 연애를 하면서 ‘남자가 몽정할 때의 기분’과, 남자도 여자처럼 스킨쉽에서 따뜻한 감정을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여성의 현실. 그것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평범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가 원하는 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마치 병희가 부끄러워 검사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의 자궁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알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그 어느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닽다.

 

 그래서 <여우야 뭐하니>는 시청자에게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감상법을 요구한다. 환타지를 가미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것을 이어갈 수 있는 강렬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대신, 현실에 맞닿은 <여우야 뭐하니>는 집중력있는 메인 스토리대신 느슨한 흐름속에서 여러 캐릭터들의 세밀한 현실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바란다. 그래서 <여우야 뭐하니>는 비교적 현실적인 연애담을 담았으나 그래도 재벌 2세가 등장하며 환타지를 만들어냈던 김도우 작가의 전작 MBC <내 이름은 김삼순>보다 시청층이 좁을 수도 있고,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만 할지도 모른다. 대신 <여우야 뭐하니>의 캐릭터들의 현실적인 마음에 공감할 때, 시청자는 그리 톡톡튄다고는 할 수 없는 스토리의 드라마가 갑자기 자기 가슴을 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여우야 뭐하니>의 관건은 얼마나 새로운 사건을 벌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세밀하게 묘사된 캐릭터의 일상이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내느냐에 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여우야 뭐하니>를 통해 한가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드라마에서도 환타지대신 우리의 일상을 바라보게 되기 시작했다는 현실을.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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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1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역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