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 임길택 선생님이 가르친 탄광 마을 어린이 시 보리 어린이 21
임길택 엮음, 김환영 그림 / 보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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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월급

6학년 정재옥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아버지 월급 쓸 것도 없네.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때 행복하다.  너무 늦게 철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야 하는 것은 서럽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사북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어린이들의 글을 모은 시집이다.

아직 어리기만 한 초등학생들인데, 아이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힘겹게 일하시는지, 월급날에 아버지 어머니가 왜 더 서러운지를 알고 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절대로 광부가 되지 말아라 하시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이 커도 광부가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체념하듯 중얼거린다.

이들의 고단한 삶은 그림을 통해서도 절절하게 전해진다.  마치 판화를 찍은 것같은 굵은 선의 그림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탄광만큼 까맣고 깊은 동굴처럼 보인다.  



산비탈에 난 갱도에 줄줄이 들어가 있는 것은 까만 얼굴, 까만 손의 아버지들... 눈조차 표시되지 않을 만큼 까만 점으로 보이는 마음도 까맣게 탄 아버지들이다.  재생지처럼 보이는 약간 누런 종이는 그러나 만져보면 매우 부드러운 촉감인데, 판화같은 이 그림들에 잘 어울리는 질감을 갖고 있고, 거의 흑백으로 묘사되는 그림들 중에 간간히 빨갛게 칠해진 색감들이 그럼에도 아이들이 버리지 못하는 희망처럼 보인다.

투정부릴 나이에 이미 투정조차 사치라는 것을 아는 가난한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고,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 마음이 언제 아픈 지를 알고 있다.  아픈 동생을 돌봐 주고,  형님 누나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보다 넓고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 지쳐 있다.

막장

6학년 노영민

나는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알아요.

좁은 길에다

모두가 컴컴해요.

오직

온갖 소리만

나는 곳이에요.

 

아이들은 장차 자신들이 어른으로 살아갈 세상을 장미빛 미래로 보지 않는다.  대물림될 광부로서의 숙명을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어린 마음이, 아직은 순수하게 빛나고 있는 게 다행이면서 또 그래서 참 아프게 느껴진다.

나도 광부가 되겠지

6학년 김선한

검정 페인트의 옷에

철모같이 단단한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동굴에 들어가

탐험을 하게 되겠지.

그때 까만 얼굴에 총총한 눈을 하고 있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자신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만 동굴이 더 이상 '탐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겠지만, 나는 이 책이 그들에게 '상처'가 아닌 '추억'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안쓰러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맘껏 기대어 투정도 부리고 어리광도 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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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3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학년 아이들이 쓴 어린이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쓰럽네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 임길택님이 엮은 동시집의 시들은 대개 이렇게 꾸밈없더군요. 말장난이나 부리는 다른 어린이시나 동시와는 다르게요.

마노아 2006-09-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솔직하고 진솔해서 더 아프죠. 임길택님 다른 책들도 찾아보려구요. 역시 아플 것 같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