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귀현 기자]

▲ 91년에 데뷔한 '노이즈'가 중2 영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요즘 중학생들은 '동방신기'나 'SS501'이 교과서에 실리길 원한다.
ⓒ2006 김귀현

얼마 전 나와 나이 터울이 큰 중학교 2학년 사촌 동생이 나에게 영어를 묻겠다고 교과서를 들고 찾아왔다. 영어를 놓은 지가 오래라 내심 긴장하며 교과서를 받아 보았는데, 그 교과서에서 낯익은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얼핏 보아도 요즘 사람들 같지 않았다.

"이거 네 교과서 맞니?"
"응 맞아, 내 교과서야."


사촌 동생은 자기 교과서가 맞다고 한다. 난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교과서에는 1991년에 데뷔하여 국내 최초로 클럽댄스풍 하우스 뮤직을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룹 '노이즈'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너에게 원한건'과 '변명'은 이들 최고의 히트곡이다.

"그럼 여기 사진에 있는 그룹 누군지 알아?"
"아니, 난 모르는데, 선생님이 자기가 초등학교 때 나온 가수래."


동생의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와 같은 또래인 듯하다. 나도 노이즈가 나올 당시 초등학생이었으니….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전까지 90년대 초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이들의 경력은 인정하지만, 2006년의 교과서에 등장하는 건 좀 어색하지 않나? 그래서 또 물었다.

"지원아, 네가 몇 년 생이지?"
"나? 92년생이지."


1992년생이라고 한다. 1992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배우는 영어 교과서에 1991년에 데뷔한 노이즈의 사진이 실려 있다. 게다가 노이즈와 함께 나온 예문은 "(노이즈의) 콘서트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이다.

내가 알기에는 노이즈의 콘서트가 95년쯤에 있었다. 그렇다면 10년 전에나 할 법한 대화가 요즘 영어책에 실린 것이다.

묵직한 플립형 휴대전화기의 광고문을 써보라고?

▲ 무선전화기를 방불케 하는 휴대전화기가 Lesson8 첫 장을 작식한다.
ⓒ2006 김귀현

노이즈는 그나마 다행이다. 몇 장을 더 넘기니, 광고문을 배우는 챕터에는 첫 장부터, 묵직한 초창기 휴대전화기의 사진이 자리잡고 있다. 무선 전화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휴대전화기가 자리잡고 있고, 이것이 무엇을 광고하는지 맞춰보라고 한다.



 
▲ 이 흑백 휴대전화기에 대한 광고문을 작성하라고? 난이도 최상급의 문제이다.
ⓒ2006 김귀현
요즘 중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폴더형 또는 슬라이드형 칼라 휴대전화기를 쓰던 세대이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플립형 휴대전화기를 알 리가 없다. 무전기인지 무선 전화기인지 이들은 이게 뭘 광고하는지 알 턱이 없다.

몇 장 더 넘기니 휴대전화기의 광고문까지 직접 영작해보라고 한다. 사진 속의 휴대전화기는 다행히 폴더형이긴 하지만, 액정이 초록 바탕의 흑백이다. 요즘은 흔하디 흔한 카메라조차 달리지 않은 그야말로 '구식' 휴대전화기다. 중학생들이 이런 구식 휴대전화기에 대한 광고문을 어떻게 작성할지 정말 궁금하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중학 영어 교과서

교과서를 더 훑어보니 사진들이 대부분 현 실정과 맞지 않는 과거의 사진이었다. 서양의 학생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사진은 찍은 지 20년은 되어 보였다. 한껏 부풀린 머리 모양과 일자 청바지 모두 80년대 서양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들이다.

▲ 20년은 되어 보이는 옛날 사진이 요즘 교과서에 실려 있다.
ⓒ2006 김귀현
이젠 모두 중학생 정도의 아들, 딸을 두었을 법한 연배의 사람들이 교우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금의 386세대가 대학생 시절, 장발에 전영록 안경을 쓰고, 통기타를 들고 있는 사진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셈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교과서 내용을 대폭 개정한다고 한다. '가정 일하는 어머니', '일하는 아버지' 부분이 수정되고, '산아 제한'의 내용도 '출산 장려'의 내용으로 개정된다고 한다. 개정을 하게 되면 수고스럽겠지만 첨부 사진도 최신의 것으로 교체해주시길 바란다.

교과서라면 텍스트가 우선이지만, 요즘은 이미지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이미지에 민감한 요즘 학생들은 이런 사진 하나하나에 더욱 교과서에 신뢰를 못 하게 되고, 결국에는 공교육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교과서가 시대에 발맞춰 나가지 못하는 콘텐츠들로 가득하다면,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마다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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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1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면 노이즈도 상관 없겠지만, 이건 좀 심하네.
오늘 수업 시간에, '메가다'가 재정 고문으로 왔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다가, "니들, 메칸더 브이 아니?"라고 하니까 모른단다. 그거 엄청 재밌었는데 모르네... 했더니 듣도 보도 못한 낯선 프로를 대보더니, 아냐고 묻는다. 씨이.. 바로 복수하다니..ㅡ.ㅜ

Mephistopheles 2006-09-1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백 전화기의 광고 문구라면....일부 학생들은 아마도..



대부분 이런 광고문구를 넣지 않을까요.??? =3=3=3


마노아 2006-09-1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