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윤하정 anchoryoon@naver.com
바야흐로 공연의 계절이 찾아왔다.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왠지 모르게 멜랑꼴리(melancholy)하고 센티멘탈(sentimental)한 마음에 환상의 세레나데를 퍼부을 굵직굵직한 가수들의 콘서트가 잇따르고 있다. 그 시작은 ‘라이브의 귀재’이면서 가히 ‘우리나라 공연문화를 선도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승환이 문을 열었다. 돈 내고도 보기 어렵다(표를 구하기 힘들어..)는 이승환 콘서트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일까?

환장남녀

이승환 콘서트 <이승환이 꿈꾸는 음악회>
또 볼 거냐.. 지금 옆 사람 또 볼일 없으니 맘껏 즐기자!
나 몰라라.. 나만 즐거우면 되는 거 아냐?!
나 하나쯤이야.. 나 하나 환장한다고 해서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이승환이 장려하는 ‘공연에 임하는 팬들의 자세’다. 실제로 영화 값의 10배 이상을 주고 보는 콘서트임에도 분위기가 낯설어, 주위 사람 의식하느라, 남자니까,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신나게 박수도 못치고, 두 팔 벌려 소리 한 번 시원하게 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승환 콘서트에는 오랜 세월 위와 같은 지침에 세뇌당한 무수한 환장남녀들이 있다. 진짜 옆 사람 또 볼 거냐? 비싼 돈 내고 왔으니 ‘나 몰라라’ ‘환장’해보자!

기발한 아이디어 + 수많은 볼거리

‘환장’을 그냥 할 수는 없다. 그만한 무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승환이 꿈꾸는 음악회’는 자칭 ‘액션.율동’가수인 그가 올곧게 음악만 하겠다며 우주복을 벗어던진 공연이다. 따라서 평소 난무하는 물쇼와 불쇼가 배제되고 음악을 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됐다.

일단 라이브 무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special version들을 보자. 그야말로 뛰고 또 뛰는 ‘붉은낙타’를 비롯해 탭 댄스가 가미된 ‘왜’, 마임으로 성찰의 분위기를 높이는 ‘내가 바라는 나’. 그리고 이 노래! 한때 ‘천일동안’과 ‘변해가는 그대’의 라이브 버전이 팬들의 가슴팍을 저몄다면, 최근에는 울부짖는 창하는 소리에 묻어나는 ‘당부’가 그야말로 단장의 슬픔이 되어 눈물을 똑똑 흘리게 만든다. 노래가 이다지 슬퍼도 된단 말인가..?!

창자가 끊어질 듯 애절하게 노래하는 이승환

이벤트도 새롭다. 모든 공연에서 진행되는 사랑고백 이벤트는 이제 지겹다. 어쩌면 가수들은 공연 때마다 새로운 이벤트를 구상하느라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공연의 선두주자 이승환은 다르다. 공연장에 들어설 때 각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는데, ‘세 가지 소원’이 흐를 때 이승환이 전화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이크를 떼고, 전화기에만 대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다. 그 순간 단 한 사람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승환의 달콤한 노랫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대신 나머지 팬들은 질투에 귀가 멀어 고함을 질러댔다.

그런가하면 이번 공연에서는 올 연말 발매 예정인 9집 에 실릴 곡들도 간간히 소개했다. 게다가 노래에 담길 팬들의 음성을 현장에서 직접 녹음까지 했다. 9집에서 듣게 될 'rewind'라는 함성은 이번 공연장에서 맹렬한 훈련 뒤에 녹취된 것이다. ‘내 목소리가 이승환 앨범에 실린다’, 그 뿌듯함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공연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달리고 달려도 끄떡없는 가창력

이승환을 두고 ‘라이브의 귀재’라고 하는 이유, 그래서 공연 때마다 예매가 시작된 지 채 10분도 안 돼 표가 매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없다. 바로 그의 가창력 때문이다. 라이브 무대에서의 가창력! 참아왔던 슬픔을 어루만지는 애절한 발라드를 부를 때는 물론이고, 무대를 휘젓듯 뛰고 또 뛰는 노래에서도, 또는 공연장이 부서질 정도로 내리치는 폭발음 속에서도 그는 진정한 가수로서의 진가를 보여준다. 설령 가사는 까먹더라도 음정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보통 4시간을 넘나드는 공연동안 팬들마저 지쳐 주저앉아도 이승환은 끄떡없다.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그 속에 담긴 절절한, 폭발할 듯한 감성에 몇 번이나 몸에 소름이 돋는다. 공연의 완성도, 바로 재미와 감동을 함께 맛보게 된다.

무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라이브의 귀재’ 이승환

이승환이 뛰어넘어야 할 산

이승환 세대의 모든 가수들이 풀어야 할 과제겠지만 새로운 팬 층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10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컨셉도 ‘대책 없는 유치함’이었다. 또 자신의 노래만 불러왔던 그가 지난 3월 공연부터는 Queen이나 타샤니 등 다른 가수의 노래도 부르고 있다.

그러나 세밀한 수위조절이 필요하다. 물론 이승환 공연이 갖는 재미가 ‘깊이’와 더불어 공존하는 ‘유치함’이긴 하지만, 자칫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어차피 새롭게 그의 공연장을 찾는 사람은 ‘동방신기’에 열광하는 10대보다는 기존 골수팬의 손을 잡고 오는 20-30대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어차피 좋은 노래는 언젠가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게 되어 있다.


<이승환이 꿈꾸는 음악회>가 9월 한 달 동안 전국 투어에 나선다. 연말에는 9집 발표와 함께 그야말로 ‘환장'할 공연도 마련될 것이다. 그의 공연은 진화한다. 한번쯤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가수 이승환의 팬은 되지 않더라도, 이승환 콘서트는 다시 가겠다고 다짐하게 될 것이다.

제3회 이승환이 꿈꾸는 음악회
2006년 9월 2일 ~ 3일
MelOn-Ax
라인
저자소개
KBC 광주방송과 조흥은행 사내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프리랜서 기자로 TBS 교통방송과 <좋은콘서트> 웹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정체성에 일대 혼란이 일었으나, 먼 훗날 따져 묻기로 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버린 것처럼 눈이 나풀거리던 어느 해 3월, 이소라 콘서트에 가지 않았다면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도 상자에 남아있던 '희망'처럼 그 후회의 시간에 '공연으로 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사그라들지 않는 꿈과 열정, 감동과 위로가 있는 공연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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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24에서 퍼왔어요. 이게 내 공연 후기면 얼마나 좋을까.(>_<)

그런데 이번 공연에 "왜"는 안 불렀을 텐데....;;;;;;

하여간, 대체로 맞는 표현과 지적들이다. 한번 그의 팬이 되면 골수팬이 되고, 그 사람들이 다시 공연장을 찾는다.  그래서 새로운 관객이 들어설 틈이 부족하다.  십대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압도적으로 적은 것도 사실. 이번 서울 공연에는 초딩 팬이 왔었다 한다.  그리고 서울 이틀 째에는 외국인이 왔었고.

아, 이 글 쓰는 와중에 드팩에 이승환 글 올라왔다는 어느 동지의 문자가 도착함. 음하하핫, 운명이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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