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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누구세요? ㅣ 웅진 세계그림책 151
앤서니 브라운 그림, 샐리 그랜들리 글 / 웅진주니어 / 2015년 12월
평점 :
내가 어릴 때는 내 방이라는 게 없었고, 집에서 가장 어렸으니 아마도 가장 일찍 잠들었을 터이고, 내가 잠들 때도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다반사였으니, 잠들기 전에 무섭다고 잠 투정할 일은, 아마도 없었을 거라고 지금 추정한다.
열두 살 조카는 샤워할 때를 빼고 화장실 들어갈 때 문을 살짝 조금 열어두고 들어간다. 무섭기 때문이다. 거실에도 방 안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한다. 어떨 때는 노래도 부른다. 흥이 나서라기보다는 무섬증이 들지 않도록 중얼거리는 주문처럼 들린다.
일을 하다 보면 건물 전체에 나 혼자 남아있을 때가 많다. 몇 해 전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식겁하고 놀랐다. 일단 복도에 전원이 다 내려져 있었고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내려오는데, 난 다 내려온 것 같았는데 아직 한층이 더 남아 있어서 또 비명이 터질 것 같았던 무서움. 그런데 그때 뿐이었다. 이후 어둡고 시커먼 큰 건물 안에 홀로 남는 일이 자주 발생했지만 그때처럼 무섭지 않았다. 필요하면 화장실도 들렀다가 온다. 난 이미 충분히 어른인 걸. 비록 공포 영화는 보지 않지만 어둠을 가장 무섭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 잠들기 전에 무서워 하는 아이를 위해 아빠는 변신 모드를 가동한다. 고릴라도 되어보고 마녀도 되어보고 유령이나 거인으로도 변신한다. 모두들 예의바르게 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아이는 출입을 거부한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반가운 얼굴 우리 아빠! 아이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우스개 분장도 해보고, 아이가 가장 반가워할 얼굴로 짠!하고 나타나는 이 센스쟁이 아빠는 얼마나 멋진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놀아주고 이해해주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사랑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익살맞고 따뜻한 그림들이 반갑다. 울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 놀아주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울 아빠도 날 사랑하셨을 테지. 워낙 말씀이 없던 분이셔서 그분의 감정표현은 대체 어디에...란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