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한수산 지음 / 해냄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저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어딘가의 서평이 인상적이어서 펴 들었던 책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책을 만났는데, 짐작했던 것 이상의 감동을 내게 선사했다.


긴 시간 글을 써왔던 저자의 삶의 애환이라던가 애착,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행간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느끼는 깨달음조차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이 간접 경험이 확실하게 전달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첫 주례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 사랑했으니, 이제부터는 좋아하라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말하던 것이 가슴에 깊게 꽂혔다.  흔하디 흔한 주례사,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는 뻔한 말 대신, 그는 삶을 살면서 본인이 사무치게 깨달았던 진리를 이제 새 삶을 시작하는 부부에게 적나라하게 강조,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비단 그들 뿐 아니라 독자에게까지도 알려주는 것이다.  그건 단지 현실은 쓰디 쓴 거야!라는 쓴소리가 아니라, 그러니까 더 열심히, 더 아름답게 살라는 고마운 충고였다.


그가 만났던 시인 박목월과, 그가 일본에서 해후했던 노래 쓰는 이와, 마당의 오동나무와 그가 듣곤 했던 음악들이... 하나의 정경이 되어 내 마음 속에서 그리고 머리 속에서 펼쳐졌다.  여전히 따뜻하고 흐뭇한 광경들이다.  마치 내가 그 속에서 함께 느끼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전달을 잘했다는 소리.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 빨리 가려고만 하니까, 그 경쟁 속에서 숨이 막히느니,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이렇게 복잡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삶 속에 녹아드는 것도 큰 매력일 것이다.  이 책이 그런 매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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