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하하하 ‘One'이래, ’One'이라구!“


 그랬었다. 10년 전, 군대에서 새벽 보초를 서고 있었을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메탈리카(METALLICA)의 ‘Orion'을 듣고 싶었다. 'Orion'을 듣고 싶어, 듣고 싶어, 듣고 싶어... 결국 첫 휴가를 나와서 홍대 놀이터에서 이어폰을 꽂고 ’Orion'을 반복해 들었다. 얼굴 한 번 직접 본 적 없는 클리프 버튼이 왜 그리 일찍 죽었는지 한탄하면서. “너가 죽어서 메탈리카가 ‘Load'따윌 낸거라고!”


 하지만, 그 때는 정말 몰랐었다. 10년 뒤, 메탈리카가 밤 하늘을 보고 있는 내 바로 앞에서 진짜로 ‘Orion'을 연주할 줄은. 내 뒤의 30대 후반쯤 되는 남자가 ’One'이 흘러나오자 넋이 나간 채 비명을 지른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메탈리카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단지 한 인기 밴드의 공연 감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건 길게는 20년 넘게 메탈리카의 팬으로서, 10대와 20대를 ‘메탈 빠돌이’로 살았던 이들이 자신의 과거를 구제하는 의식이다. 그 때 그들에게 메탈리카는 모두를 하나로 묶는 아이콘이었다. PC통신에서 건스 앤 로지즈가 최고네 꼴통이네 하던 인간들도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와 ’....And justice for all'이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것은 인정했고, 기존의 사운드에 보다 타이트한 구성과 팝적인 접근을 뒤섞은 ‘Metallica'는 한국의 수많은 스쿨 밴드라면 무조건 ’Enter sandman'을 카피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몇 번씩 복사돼 지글지글한 화면의 메탈리카 공연 비디오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고, 남들이 한국 가수들을 좋아하고 있는 동안 데이브 머스테인과 메탈리카의 애증관계에 대한 팬픽을 쓰고 있었다.


 Master! Master!


 그것은 곧 메탈리카가 한국 록의 한계를 상징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리 록 팬들이 메탈리카에 미친 듯이 열광한다 한들, 메탈리카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 한국은 헤드뱅할 곳이 없어 신촌의 록 뮤직비디오 상영관 ‘백스테이지’같은 곳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나 헤드뱅을 하고, 메탈리카는 커녕 딮 퍼플도 1990년대가 다 지날 때 쯤에나 볼 수 있던 나라였으니까. 메탈리카가 모스크바의 10만 관객 앞에서 ’Enter sandman'을 연주하는 동안, 한국의 팬들은 “씨발, 가고 싶어!”를 외치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들이 메탈리카의 음악을 듣고, 포스터를 사 모으며, (혹시나 있다면) 여자친구에게 "이거라면 너도 들을 수 있을거야“라며 ‘METALLICA' 앨범을 권하는 것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염원이나 다름 없었다.


 메탈리카가 1998년 첫 내한 공연을 가졌을 때, 한국의 팬들이 그토록 미친듯이 열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이뤄질 수 없을 거라 믿었던 꿈과의 만남이었고, “우리도 이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근 20여년을 TV와 일간지의 바깥, 전영혁과 핫뮤직의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1990년대 후반 갑자기 록과 인디가 하나의 유행이 되는 것을 목격했고, 스매슁펌킨스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이, 그리고 블러와 메가데스가 한국을 찾는 일들을 경험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록이 세상 앞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메탈리카 앞에서 길고 긴 ‘Master of Puppets'를 따라부르고, ’Memory Remains'의 후렴구를 외치면서 자신의 소원을 풀었다. 이제, 우리도, 메탈리카를,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산다!!!!!!!!!!!!!


 그러나, 한국의 메탈리카의 팬들과 메탈리카, 더 나아가서는 록과의 끈적끈적한 애증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금새 다시 올 것 같았던 메탈리카는 다시 오지 않았고, 한국 최초의 국제적 록 페스티벌이 될 것 같았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은 폭우로 첫날 공연만 간신히 치러졌다(나 그 때 환불 못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 영원할 것 같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스래쉬 메틀 4인방은 메탈리카 외엔 점점 활동이 뜸해졌고, 얼터너티브의 4대그룹들은 펄 잼을 제외하곤 모두 멤버가 죽거나, 해체됐다. 그리고, 2000년대가 시작되자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엔싱크가 등장했다. 한국? 보시다시피. 이제 사람들은 “너 메탈리카 들어봤어?”라고 묻는 독특한 인간들에게 딱 한마디 던진다. “나 그런 거 안들어.”


I can't remember anything


 물론, 그래도 메탈리카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메탈리카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메탈리카가 아니라 ‘애증의 메탈리카’였다. 한국의 메탈리카 팬들은 ‘Metallica' 이후 그들이 또다른 스래쉬 메탈로 돌아와 얼터너티브건 팝이건 모두 쓸어주길 바랬다. 자체적인 록 문화란 것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던 한국에서 메탈리카같은 거대 록밴드의 행보는 한국 록 팬드f의 운명을 갈랐다. ’Master of puppets'같은 곡이 없다면 메탈 팬들은 어떤 곡을 들으며 헤드뱅을 해야 하나. 국내밴드 크래쉬? 멍키헤드? 그러나, 메탈리카는 그 모든 바램을 배반한채 ’Load'와 ‘Reload'를 통해 ’얼터리카‘가 됐다. 그것은 곧 긴머리 휘날리며 화려한 기타솔로가 등장하는 6~7분짜리 곡들이 ’백스테이지‘를 점령하는 시대의 완벽한 종언을 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팬들이 2006년에도 메탈리카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 잠실 메인스타디움에 올라오게 된 것은 그들이 ‘Load'와 ’Reload'를 내면서 계속 록계의 현역으로 남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은 벌만큼 벌었고, 고정 팬들을 상대로 전세계 투어나 하며 후배들에게 전설로 칭송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메탈리카는 화석화 되는 공룡밴드가 되는 대신 진창같은 록 음악계의 중심에서 끝까지 버티는 길을 선택했다. ‘Metallica'로부터 연작 성격의 ’Load'와 ‘Reload', 그리고 ’St.Anger'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팝과 하드록을, 얼터너티브를, 그리고 뉴메틀을 끌어들이며 끊임없이 변화했고, 그 때마다 이슈의 중심에 섰다. 그들을 보며 자란 밴드들이 한 때 반짝했다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계속 과거와 다른 음악을 발표했고, 메탈리카는 스래쉬 메틀을 벗어나 ‘메탈리카풍’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장르를 확립했다.


 I'm your only true friend now.... You know it's sad but true


  그들이 ‘St.Anger'를 만들 당시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Some kind of monster'를 보라. 메탈리카는 멤버들 각자가 이미 어마어마한 땅을 소유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수백만달러짜리 그림을 경매에 매각하며, 새 멤버인 로버트 트루질로에게 ‘밴드의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 아무 조건없이 백만달러를 지불하는 거부가 됐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더 나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멤버들의 트러블을 조절하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동원하고, 데이브 머스테인을 만나 용서를 구하며, 더 좋은 사운드를 찾기 위해 스튜디오를 새로 지었다가 작업이 지지부진해지자 다시 새로운 스튜디오를 찾는다. 그들은 20대 시절처럼 열정 하나만으로 곡을 만들 수는 없지만, 대신 음악에 대한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에 변화의 긴장감을 부여했다.


 'Load' 이후의 메탈리카의 음반들이 이전의 음반보다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메탈리카는 그 불안한 변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데뷔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보의 내용물이 기대되는 밴드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그들은 에이브릴라빈마저 그들의 곡을 커버하는, ‘현재진행형’의 밴드가 될 수 있었다. 한 때는 메탈리카가, 너바나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또 메탈리카가 ‘얼터리카’가 되는 것을 보며 깊은 배신감에 PC통신에 메탈리카를 씹어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결국 내 옆에서 끝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메탈리카였다. 한국에서 록을 부흥시키겠다며 기타를 메고, 해외 잡지를 번역하며 원고료도 없는 리뷰를 쓰던 그 대학생들이 하나 둘 씩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했으며, 회식자리에서 과장님과 함께 ‘남행열차’를 부르는 이 순간까지.


Enter night, exit light, take my hand


 그렇기 때문에, 메탈리카의 공연이 잠실 메인스타디움에서, 8월 15일에 열린 것은 메탈리카의 팬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의미를 갖는다. 메탈리카 공연은 그들이 포기한 꿈을 잠시나마 되돌려 놓았다. 한국에서도 록 스피릿이 충만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그 때의 꿈들. 메탈리카가 ‘Orion'과 ‘Master of puppets’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고, 앵콜에서 ‘Seek and destroy'를 연주하는 순간, 그 꿈은 현실이 됐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메탈리카가 메인스타디움에서 공연할 것이라는 기대로 잠을 설치던 그 때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그들은 늦게나마 소원을 이루었고, 소원을 가장 멋있게 이루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해왔다. 메탈리카가 ’For whom the bell tolls'의 전주를 연주하자 관객들은 알아서 슬램을 시작했고, ‘Master of puppets'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임스 햇필드의 노래에 맞춰 “Master! Master!"를 열창했다. 그건 단순한 관객의 호응이 아니라, 20년동안 꿈꿔왔던 그 순간을 스스로 실현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20대에 부딪치고 좌절하며 결국 이루지 못했던 그것들. 메탈리카 공연은 그것에 대한 작은 보상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메탈리카 공연은 다분히 회고적이었다. 메탈리카의 멤버들은 처음부터 그들과 한국 팬들의 ‘재회’에 초점을 맞춘 멘트를 했고, 공연의 대부분은 ‘Master of puppets'와 ’Metallica'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1~5집의 곡들로 채워졌다. 물론 현재진행형의 밴드가 과거의 인기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것은 스스로 그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메탈리카 팬들은 메탈리카가 ‘Master of puppets'로 세상의 끝에서 끝을 누빌 그 당시, 빽판 앨범으로나 그들의 음악을 들어야 했다. 메탈리카가 그 시절의 곡을 연주함으로써 메탈리카는 팬들이 그들에게 가장 열광했던 그 시기를 되찾아 주었다. 그것은 마치 한국 팬들이 뽑은 베스트 앨범을 연주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번 공연에서 팬들이 놀라울 정도로 그들의 곡을 다 따라 부른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들은 메탈리카의 노래를 목청높여 부를 수 있는 순간을 원했다. 특히 ‘Orion'에서 팬들이 보여준 반응은 그 자체로 밴드의 연주를 능가하는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관객들은 변화무쌍한 'Orion'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고, 곡의 흐름에 따라 화려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줬다. 곡이 격렬해질 때는 슬램을, 잔잔해졌을 때는 손을 흔들고, 커크해밋의 기타 솔로가 나올 때는 허밍으로 그 음을 모조리 따라부르는 관객을 가진 나라가 전 세계에 얼마나 있을까.


 물론,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메탈리카였다. 비록 과거처럼 3시간 이상의 라이브를 하지는 못했지만, 메탈리카는 2시간 30여분 남짓한 시간동안 그 수많은 메탈키드들이 좌절을 맛봤던 ‘One'과 ’Seek and destroy'등의 대곡을 정확하게 연주했고, 공연 마지막까지 파워풀한 사운드로 관객과의 기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특히 공연의 사운드는 잠실 메인스타디움의 한계를 극복할만한 수준이었다. 잠실 메인스타디움은 소리를 집중시키기 어려운 개방형 공연장일 뿐만 아니라 경기장과 객석 사이에 트랙까지 있는 큰 규모 때문에 사운드의 반사와 메인스피커와 리어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의 시간차가 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크다. 메탈리카에 앞서 공연을 했던 툴의 경우도 사운드가 퍼지고 뒤섞여서 스탠딩석의 한가운데 자리에서도 사운드가 명확치 않았고, 베이스는 지나치게 강하게 울렸고, 공연장 앞뒤로 사운드가 계속 딜레이 되곤 했다. 반면 1시간이 넘는 세팅 끝에 잡아낸 메탈리카의 사운드는 스타디움의 양 옆쪽은 사운드가 벙벙거리는 곳이 있었고, 사운드가 꽉 차게 들리기 어려운 메인 스타디움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딜레이도 거의 느낄 수 없었고, 로버트 트루질로의 영입후 더욱 헤비해진 베이스는 단단한 소리를 냈으며, 무엇보다도 메탈리카를 이끄는 디스토션 기타의 파장이 섬세하게 분리되면서 메탈리카 특유의 ‘갈아버리는’ 사운드가 고스란히 유지됐다. 또 ‘For whom the bell tolls'의 시작부분에서 베이스의 박자를 정확하게 맞춰 점점 로버트 트루질로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며 박진감을 부여하는 등 음악의 흐름을 그대로 살린 대형 스크린의 영상은 공연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메탈리카가 한국의 팬들에게 안겨준 것은 단순한 추억의 재생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이었다. 관객들이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 1집 ‘Kill em' all'의 ’Seek and destroy'와 그들 최고의 히트곡 ‘Enter sandman'을 따라 부르며 모든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 그 순간, 메탈리카는 새 앨범의 신곡을 소개하며 관객들에게 미래를 보여줬다. 'St. Anger'와 또다르게 펑크와 하드록, 그리고 메탈리카 특유의 구성이 섞인 그 곡은 메탈리카의 새로운 변화를 예감케 했다. 그리고 라스울리히는 ’대~한민국‘대신 ’메~탈리카‘를 연호하는 관객들에게 다음 앨범 발매 이후 투어에서 한국을 찾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신의 드럼 스틱을 팬들에게 나눠주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들이 더 올라갈 데 없는 전설이 되고, 그들의 팬들이 더 이상 록스피릿을 말하지 않는 지금에도, 여전히 다가올 미래는 존재한다. 정열은 사라졌어도, 프로페셔널의 일에 대한 '투쟁’은 남아있다. 


 ......................Off to never never land


 록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고,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록 빠돌이를 자처했던 그들은 그 과거를 그리 자랑하지도 못한 채 방 한켠에 치워둔 먼지 쌓인 앨범들을 가끔씩 바라본다. 그러나, 메탈리카는 그들을 위로한다. 괜찮아. 너희는 틀리지 않았어. 그래도 너희는 20년 동안 모든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는 밴드 하나를 가졌잖아.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http://bbs.freechal.com/ComService/Activity/BBS/CsBBSContent.asp?GrpId=908398&ObjSeq=2&PageNo=1&DocId=154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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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리플 크라운의 강명석씨 글이에요. 메탈리카를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이 글을 보니 찡한 감동이 밀려오는군요. Enter sandman'은 공연장에서 이승환이 불렀었기에 알게 된 곡인데 다시 듣고 싶어지네요. 집에 가서 찾아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