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
김선미 지음 / 마고북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이 절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 출발이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일은 진행되어 간다.

이 책의 저자가 꼭 그랬다.  자신의 집에서부터 남쪽으로... 국토의 끝까지 가서 제주도, 마라도... 그것도 무려 보름 간의 일정으로 두 딸을 데리고 가는 긴 여정이란, 계획을 세울 때의 당위성보다도 이 계획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무모할까에 대한 걱정이 압도적으로 컸다. 

그러나 그들은 출발했고, 마침내 그들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들의 여행과 여정은 내게 몹시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산이든 바다든, 그런 식의 야영을 가져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가족과의 여행이라니...

그들이 밟아낸 보름 간의 여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솔솔했지만, 그들 '가족'이 해낸 여행의 의미가 내게는 더 크게 보였다.

책을 보다 보면 그들 가족의 생활 패턴이 눈에 띄는데 꽤 친환경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울타리가 없는 집 마당이라던가, 텔레비전은 있되 비디오 시청용으로만 쓰고, 그보다는 도서관에 가는 것을 온 가족이 즐기며, 낯선 도시에 가면 헌책방부터 뒤지는 것이 그들 부부의 특성이었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쓰는 소비적인 우리네 삶에 대한 지적과 그에 대한 반성이 그들 가족의 생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이 배운 사람은 많지만, 그 배움을 삶으로 연결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지식인이 드문 세상이다.  그런데 이들 부부의 모습을 보면 자식들 앞에 어떤 지표가 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실천하기는 물론 어렵지만 그런 각오와 모토를 지니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난 이런 여행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천해 내며, 그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길 위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그들 부모의 역할이, 역량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들이 그들 부모로부터 그런 유산을 물려받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자녀는 그들이 뿌려준 씨앗 이상의 열매를 맺으며 자랄 것이다. 

소록도에 다녀온 아이들이 남긴 일기를 보며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살아있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아이들에겐 있는데, 내가 받아보지 못한 살아있는 교육이 부럽고 아쉽고, 또 나는 그런 부모가, 그런 선생이 될 수 있는가란 생각에 두근거리기도 하고 가슴 벅차기도 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글솜씨도 매끄러울 뿐아니라, 아름다운 우리 말의 묘미를 잘 살려내는 글쓰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칼라 사진이 아닌 까닭에, 그들이 보고 온 풍경을 그 색깔 그대로 우리가 느낄 순 없지만, 난 고즈넉한 느낌의 흑백사진이 주는 넉넉함과 비어있음에 오히려 더 반해버렸다.  만약 이 책의 사진들이 광택 번쩍번쩍하는 칼라 사진이었다면 오히려 흔하디 흔한 기행문처럼 느껴졌을 지도.

여행을 준비하고 또 여행지에서 필요한 상식과 기초 팁이 부록처럼 날짜 사이에 끼어 있다.  전문가의 조언이니 귀담아 들으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그들의 여행과 여정도 부럽지만, 그들이 일궈낸 가족의 모습은 더 눈부셨다.

멋진, 좋은 책과의 만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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