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 살해사건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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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조선 선비 살해 사건2가 나왔다.  여전히 매혹적인 표지로, 더 매력적인 내용으로.

앞서 1권은, 고려말 조선 초의 등장 인물들의 뜻밖의 이면에 놀라는 내용이 많았다면,

이번 내용은 왜 사극에서 이들을 그토록 많이 다룰 수밖에 없는지, 타당성(?)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 그리고 역사였다.

이름부터 대단한 '성종', 그가 밤의 황제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음, 연산군은 아비를 닮은 게 분명하다.

왕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이 왕이 되면 언제나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다.  성종은 분명 왕족의 피를 이었지만, 서열상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극성스러운 모친께서 친히 왕으로 삼아주시니, 그 어머니의 명을 거역하는 게 쉽지 않고, 또 거역할 마음도 별로 없었던 게 그의, 그의 부인 윤씨의, 그리고 아들 연산의 비극이 아닐까.

오늘을 사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 폐비 윤씨는 여러모로 억울한 게 많다.  지아비는 귀가 얇았고, 시엄씨는 자신을 원수 보듯 했고, 아들내미는 너무 어렸다.  그녀가 다소 질투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 질투도 없는 여인이 있겠는가.  다만, 그녀는 눈치가 좀 부족했을 뿐.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었어야지...;;;

그녀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 자국을 냈다는 건 속설일 뿐이라고 이덕일은 설명한다.  오히려 성종한테 맞은 건 그녀였다.(음, 왕의 체통이 무너진다...;;;)

억울하게 죽은 건 불쌍한데, 그녀의 친정 어무이께서 훗날 연산군에게 어미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은 좀 아니다 싶다.  그녀 역시 이용당했을 테지만, 절대로 지혜롭지 못한 처사였던 것 같다.  이미 수백년 전에 벌어진 일을 내가 혀를 차봤자 아무 의미 없는 일이지만.

어린 연산이 어미소와 송아지를 보고 부러워했던 모습이 눈물 겨웠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관심이었노라는 이덕일의 설명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왕실의 어른들은 왜 그것을 몰랐을까.  아니, 알고도 외면했을까.

연산 역시 눈치 빠른 인간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가 선대로부터 이어진 공신 세력으로부터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선 손잡아야 할 인물은 훈구 세력이 아닌 사람이었다.  고래로부터 입바른 소리 하는 신하를 옆에 잘 두는 성군은 드물었으니, 그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가. 

물론,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훈구파는 사림파에 비해 덜 경직된 사람들이었고, 사림파들처럼 유교 지상주의는 아니었다.  사림파는 '정도'를 추구하지 왕권의 강성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결국, 밥그릇 싸움이었다는 비판을 안 받을 수 없다.  연산의 입장에서 재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조선 속에 숨어 있는 역사의 한뜸 참조)

무오사화를 보면서 사림의 '강직'함에 대해 숙여진해짐을 느꼈다.  그들이 나중에 변질되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편치 않지만, 적어도 그들의 뿌리에선 옳고 그름을 판별할 때에 '의'를 위해서 목숨 따윈 초개처럼 내던지는 근성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유자광 엄청 미웠다.(ㅡㅡ;;)

무오사화가 시작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가엾게도 이제 시작이었다.  앞으로 사화는 세번이나 더 남은 것.

어머니 윤씨의 죽음은 언제고 터질 화약이었다.  잠재되어 드러나지 않을 뿐, 그때가 언제든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올 문제였다.   거기에 대한 보험은 연산이 왕이 되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철저한 사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다 하지 못했으니 피비린내가 진동할 수밖에.

나는 이 부분에서 이덕일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는데, 주연은 성종, 연출은 인수대비라는 말이 너무 딱 들어맞아서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여기서 그쳤다면, 연산은 '연산군'이라는 이름으로 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복수였으니까.  그래도 거기서 멈췄다면, 피는 보았을지언정 쫓겨나는 군주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멈출 줄 몰랐다.  아니, 더 망가져버렸다.

이름 짓는 데는 도사였던 연산군은 그야말로 '흥청망청' 놀았다.  그것도 도에 지나치게.

큰어머니를 욕보인 것은, 그가 왕 아니라 하늘 신이라 할지라도 용서받을 없는 중죄.  여기서 반정공신들에게 명분을 주고 말았다.  장녹수도 여기에 한몫 단단히 했다.  한 세상, 그래도 권력을 쥐고 흔들어 보았으니 죽는 순간 후회는 없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

연산군의 치세는 짧게 끝났다.  중종반정은 긴장감 속에서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 중종이 이후 허수아비 임금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다행히 반정3공신이 일찍 죽어주었지만.

이제 강한 왕으로 거듭나고 싶은 그에게 조광조라는 날개가 생겼다.  둘의 비극은, 훈구파를 몰아내는 할 입장은 같았으나 최종 목표는 서로 달랐다는 것. 중종은 왕권 강화가 목표였지만, 조광조는 도의정치가 목표였으니, 거기서 조광조의 몰락은 이미 예고되었다.

그가 잡혔을 때 임금을 향한 절절한 한탄이 가슴 깊이 남는다. "신은 올해 39의 선비로, 이 세상에서 믿은 것은 오직 전하의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망한 거야..ㅠ.ㅠ 사람의 마음을, 그것도 임금의 마음을 믿었니... 라는 애도를 살며시 뿌려주고 싶었다...;;;;

대체로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좋게 들린다.  조선 시대엔 꽤 오랫동안 입에 올릴 수 없는 이름이었지만, 오늘날이야 어디 그렇던가.  그런데 이 조광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신복룡씨의 "한국사 다시 보기"에서 보면, 그는 임금을 지치게 했고 피곤하게 했고, 너무 성급했다고 했다.  제시해 준 단서들을 보니, 나라도 조광조 멀리 하고 싶었을 것 같다..;;;;;;

하여간 중종은 가만 보면 첫 왕비 배신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사람 배신하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드라마 대장금보단 여인천하 때의 중종이 더 실제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에 반정에... 벌써 몇 번씩이나 등장한 공신들에 조선은 썩어갔다.  왕권을 넘나드는 신하의 강대함은 을사사화까지 이어지니, 퇴계 이황이 '퇴계'라는 호를 써가며 정치판을 떠나있고 싶어한 심정을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드라마 여인천하는 역사 왜곡이 아주 심했는데 '정난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덕일 작 "여인열전"을 참고하세용.

사림의 시련은 길고도 가혹했다.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아무리 강성한 훈구파라고 해도 거스를 수 없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연 도태되었고, 사림은 지방에서부터 그들의 뿌리를 깊게 심었다.  이제 사림의 시대가 도래했고, 경쟁자는 사라졌다.

역사의 아이러니. 사림은 집권하자마자 부패한다.  임진왜란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것.

그러나 아직까진 희망의 이야기를 남기며 책은 마친다.

부록으로 나오는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의 비교는 아주 쉽게 설명되어 있다.  윤리 시간에 설명들은 그 어려운 철학이 아니니 겁먹지 마시라.

사실 이 책이 개정판인지라 앞서 '사화로 보는 조선사' 책 한권의 내용을 책 두권으로 편집한 것이다.

추가 내용이 있지만, 상술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사도 두권 분량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워낙 책 내용이 좋으니 그래도 사 보라고 권유하겠다.  어차피 옛날 책은 절판일 테고^^;;;

역사 속 인물이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지 실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보기 바란다.  드라마에 견줄 바가 아닐 테니까.

덧글) 2권 책속 내용 보여주는 부분이 1권 내용과 똑같은 것을 인용했다.  부지런을 떨어 2권 내용으로 교체해 주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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