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괴정동에 살고 있는 김혜영(65) 할머니. 얼마 전 할머니는 114에 문의전화를 걸었다가 낯선 경험을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사랑합니다’는 말이 들려왔던 것. 화들짝 놀란 할머니는 황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잘못 걸었겠지’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이번에는 114 버튼을 하나하나 ‘꾹’ 눌렀다. 전화선을 타고 또 다시 들려오는 훈훈한 한 마디. “사랑합니다.” 114 안내 멘트가 바뀌었음을 그제 서야 눈치 챈 할머니는 왠지 싫지 않았다. 다소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정을 느꼈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제주 ‘사랑합니다’ 운동 전국으로

114가 최근 파격 변신했다. 전화를 걸면 언제든지 ‘사랑고백’을 받을 수 있다.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KT 자회사 KOIS(한국인포서비스㈜·서울~경기~강원)· KOID(한국인포데이타㈜·충청~경상~전라~제주)는 지난 1일 안내 인사말을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바꿨다. 제주는 24시간, 나머지 지역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 인사말을 사용하고 있다.

본래 ‘사랑합니다’ 운동은 KT 제주본부에서 처음 도입됐다. KOID 제주본부의 114 전화 안내 인사말에도 시범 적용됐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듣기 좋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던 것.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항의성 전화도 급감했다. ‘대박(?)’ 조짐을 읽은 KT 우상은 제주본부장은 전국 확대를 꾀했다. 이를 위해 서울지역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KOIS 이현종 본부장에게 ‘사랑합니다’ 운동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본부장은 ‘주춤’했다. 무엇보다 ‘사랑합니다’는 안내 인사말이 서울·경기권에서도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전화 안내서비스의 생명인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감안해야 했다. 스피드 감소는 곧 실적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안내 인사말을 변경한 이후 서비스 처리시간이 다소 늦어졌다. 기존 “안녕하십니까?” 안내 인사말일 때, 평균 서비스 처리시간은 18초. 반면 변경 후엔 20~21초에 달한다. 고객이 잘못 건 것으로 오인해 침묵하거나, “114 맞나요?”“인사말이 바뀌었나요?”라고 반문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처리시간이 약 3~4초 지체됨에 따라 상담원 당 받는 콜(call) 수도 평균 1천30건에서 980건으로 약 50여건 감소했다. 이로 인해 일일 평균매출 역시 2천100만원 정도 줄어들었다.


이 본부장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것은 또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1천여건의 서비스를 처리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담원들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본부장의 보고를 받은 KOIS 이상호 사장도 장고를 거듭했다. 두 차례나 재검토를 지시했다. 6월 중순경. 이 사장은 결국 ‘사랑합니다’ 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고민은 고스란히 일선 상담원에게 넘어갔다. KOIS 서울본부 상담원 전정임씨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인사말을 교체했다가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올까봐 불안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상담원 조은정씨도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운명의 7월1일 토요일 오전 9시. KOIS와 KOID는 안내 인사말을 동시에 바꿨다. “사랑합니다”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는 순간이었다. KOIS 서울본부 김선숙 정보안내 1부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사랑합니다는 말이 우리나라 정서와 잘 맞지 않는 게 사실이잖아요. 노파심 때문인지 몰라도 불안했어요. 몇 번이나 114에 전화를 걸어 고객 입장에서 확인해 봤어요.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안심했죠.”

“사랑합니다, 고객님”의 반응은 현재 만족스런 수준이다. 간혹 짜증을 내거나 당황하는 고객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 ‘호의적’이라는 게 KOIS·KOID측의 판단이다. 서비스 시간이 다소 길어졌음에도 상담원들의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 까닭이다. 일부 고객은 “저도 사랑합니다”고 화답, 상담원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전화선을 타고 ‘사랑합니다’ 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있는 셈이다.

고객 반응 지역별로 각양각색

그래서일까. 시행된 지 불과 20여일 흘렀을 뿐이지만 유쾌한 에피소드가 쏟아지고 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인사말을 던지자 “나 유부남이야”“나를 사랑하면 안 되지”라는 등 다소 엉뚱한 답변이 돌아와 상담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에피소드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지역별로 고객들의 반응이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전라도 지역은 “지금 뭐라 그랬소,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얼마만큼 사랑하오?”“me, too”라는 등 장난기 섞인 응대가 많다. 반면 경상도 지역은 “사랑합니다”는 말에 부끄러워하기 일쑤인 것으로 전해진다. “저~ 아가씨,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겠어요”라는 경상도 사나이의 수줍은 말 한마디는 KOID 경상본부 직원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했다고 한다.

KOIS 하재연 부장은 “딱딱한 ‘안녕하십니까?’ 보다 ‘사랑합니다’는 인사말이 고객들에게 훨씬 푸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면서 “비록 실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KOIS와 KOID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서비스를 통해 국민의 비서로서 거듭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적극적인 인사말 사용으로 고객에게 한 걸음 다가서겠다는 의지다. 한마디로 21세기 화두인 ‘감성경영’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KOIS 이금숙 정보안내 2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전화번호 검색도 인터넷으로 많이 하죠. 그만큼 세상은 기계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중심입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정보가 교환되죠. 그래서 인터넷 보다 훨씬 ‘따뜻함’이 느껴져야 합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인사말을 통해 114 상담원들의 ‘정’이 고객들의 마음에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화 안내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오늘만큼은 인터넷 대신 114를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빠른 전화번호 안내와 함께 사랑고백까지 받을 수 있을 테니….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출처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21/1431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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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7-22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나라의 언어든 "사랑합니다"란 고백은 아름다울 테지만, 유독 우리 말의 고움을 느끼게 하네요. 그 말을 예쁘게 쓸 때가 더 중요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