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있는데 이덕무가 너무 춥고 너무 배고프고, 너무 고단할 때 책을 읽으면 그것들을 모두 잊게 된다고 쓰여 있다.

호곡, 정말?

한번 실험해 보았다.

지금 내 마음은 사실 예술의 전당 토월 극장에 가 있다.  바람의 나라 막공이 이제 십분 뒤면 시작할 터.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막공이고, 뮤지컬 자체도 막공이라서 기대 만빵 공연인데 오늘도 가게에 매여 있어서 갈 수가 없다. (어제 다녀온 게 기적이지.ㅡ.ㅡ;;;)

그래서 책을 보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집중이 되어서 금세 시간이 지나가고 공연이 다 끝난 시간이 되면 이제 정말 끝이니까 체념이 되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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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잊긴 뭐가 잊어지냔 말이다. 생각만 더 나는 것을...(이덕무 바보!)

그래서 음악을 바꿔보았다. 바람의 나라 노래들을 듣고 있자니 장면마다 떠오르고 가사마다 맺히고 마음이 절절해져 참을 수가 없다.  똑같이 공연 실황이지만, 훨씬 신나고 짜릿한 이승환 반란 VCD에서 음원 추출한 것 듣는 중.

확실히, 기분이 좀 나아진다. (단순하긴..;;;)

그래... 잊자. 잊진 못하겠지만 포기하자. 혹시 알아? 기적처럼 서울 앵콜 공연을 해줄 지...

문화가중계...이런 프로그램에서 다뤄주면 금상첨화고~

내친 김에 김진 작가의 팬클럽에도 가입했다. 으하핫, 나중에 또 이런 공연이 나오면 단관으로 좋은 자리에서 봐야지(>_<)

이번 제목이 "바람의 나라-무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혹 다른 편집으로 또 만들 수 있을까?

2001년도 편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주인공이었으니...

하지만 그들을 모두 해버린 지금 나머지를 잘라 독립된 주인공을 만들기는 어려울 테지.

창작뮤지컬은 한번 만들기도 어렵다는데 부디 재공연이 빨리 이뤄졌음 좋겠다.

난 2001년 버전도 엄청 좋아했는데 말이지...(박완규와 박화요비 주인공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연기는 지지리도 못했지만, 노래는 겁나게 잘했다. 지금이야 달라졌겠지만^^;;;)

이제 5분 전이다. 으... 스피커 소리를 키우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딴생각하기에 몰입하기!!!

문득, 이럴 때마다 꿈꾸는 망상을 해본다. 초능력자가 되어 텔레포트를 하는 것!

내가 원하는 자리에 떡!하니 등장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  이거이거... 지나치게 현실도피적 성향이 나오는 군.

그러고 보면, 내가 공연을 엄청 즐기게 된 것은 모두 현실을 잊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어떤 배우를 좋아한다던가 어떤 가수를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누군가를 좋아하고 거기에 파고듦으로써 현실을 잊었고, 그래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버렸다.

고등학교 시절 아부지 사업이 망했을 때가 대표적인 케이스. 세번째 부도였고 재기는 불가능했다.

당시 내겐 공부라는 것 자체가 사치였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시간뿐이었다.  세상에, 20세기 말에 전깃불 없이 시험공부 해 본 애가 대체 몇이나 되었을까. 지금 보고 있는 간서치 이덕무가 햇볕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 상들고 옮겨가며 책 보았다고 했는데, 내가 딱 그랬다.  태양빛에 의존해서 책 보다가, 해가 저물면 책을 덮는...

그때 내가 만난 일종의 판타지는 전조였다.  드라마 "칠협오의"의 한 대목 20분을 보고는 단숨에 빠져버린 것.

아마도, 그건 자기최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저 사람이라도 좋아해서 현실을 잊어버려! 란 주문.

그리고 실제로, 효과는 오래 갔다. 비참했을 수도 있을 고3 생활이 난 즐거웠으니까.

그렇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서 어느 순간 약발이 떨어진다.  그때는 1999년도.

세기말이었고, 긴 휴학 중에 있었고,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과 또 자괴를 떨치기 어려울 때였다.

그 무렵에 내가 만난 신선한 충격은 이승환이었다.  그의 콘서트를 가 보고,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말로 전달하기 참 미묘한 부분인데, 인생 달리 살아야겠다!란 결심을 했던 순간.

너무 큰 즐거움을 알아버리자, 그 즐거움을 다시 누리기 위한 희생에는 불만이 없어졌다.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할 수 없는 것보다는, 어렵게라도 해낼 수 있다면 그건 기쁘고 감사할 일이니까.

이때의 약발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때와 달리 점심 사발면으로 때우고 표값을 모으지 않아도 되었으니 상황도 나아진 셈^^

긴 휴학을 끝내고 복학했을 때는 또 다시 고민에 싸였다.  전공이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는 것.

지금도 가장 무서워하는 영어공부... 나는 어쩌자고 영어교육과를 들어갔을까... 결국 학기를 마치고서 전과를 해버렸다.  인생 최대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서류상의 문제로 그나마 한학기 더 늦어져서 전과가 가능하긴 했지만.

그 무렵에는 다시 소설쓰기에 몰두했다.  인터넷의 마성에 젖어들기 시작한 때랄까.

고맙게도 좋은 지인을 많이 만났다.  지금도 두루 연락이 되고 마음써주는 사람들을...

근데, 그 소설쓰기의 약발은 작년 10월 초를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그 후로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완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그 무렵 또 다시 일상에 지쳐있던 내가 피난처로 삼은 대상은 뮤지컬 불의 검 주인공이었던 임태경이었다. 계속 올인할 수도 있었건만, 당사자가 일본에 가서 뮤지컬 겨울연가에 올인하느라 나의 관심은 조금 줄어든 상태.

그리고 이번에 대박이 터진 거지. 지킬앤하이드의 류정한과 바람의 나라에서 고영빈으로^^;;;

곰곰 생각해 본다.  내 현실이 그토록 절망적이고 서럽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좋아했던 그 크기로 그들을 좋아하지 못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팬이 다 나같았을 리도 없고.ㅡ.ㅡ;;;

그런데 아마, 지금만큼 절박하게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니, 아예 만남 자체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덕분에 가졌던 희열과, 덕분에 누렸던 위로가 내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건... 많이 섭섭한 일이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건대, 기뻤던 일보다 슬펐던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기뻤던 순간이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  힘들었던 시간을 망각해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인간이 만들어졌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일 테지.

아니, 책만 읽는 바보 얘기하다가 얘기가 왜 이렇게까지 흘러나왔지? 하여간에 수다쟁이 못 말리는 삼천포...(ㅡㅡ;;;)

어쨌든 마음은 많이 진정되었다.  이미 공연은 시작되었고, 내가 못 보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음을 비우자.....쉽진 않겠지만.6^^

기억과 추억에 기대어 버텨보자.

언젠가는, 현실의 도피로써가 아니라, 있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나 자신을 꿈꾸면서..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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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8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무, 바보!,에서
웃고 말았어요^^;;

마노아님, 멋쟁이~

마노아 2006-07-28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럭, 그런데 그 바보 이덕무가 좋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