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였다.

각자 집에서 책 한권씩 들고 와서 학급 문고를 구성할 때 이 책이 끼어 있었다.  누가 가져왔는지까지는 기억 못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어울릴 법한 책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어린 동생이 이 책을 무턱대고 들고 온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상상을 나아중에 했다^^;;

이 책은 연작소설이다. 첫 제목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은 되어 있는데 또 독립되어 있고 그리고 분리할 수 없는 연결점을 갖고 있다.

사회의 부조리를 얘기하는 글이나 드라마, 혹은 어떤 매체를 접할 때... 두가지 생각이 동시에 머리를 든다. 

-사회의 어려움과 어두움을 외면하는 것은 양심에 문제가 있어!

-그런데, 너무 칙칙한 얘기만 하면 그것도 싫어... 안 그래도 살기 힘든데 말야...

참으로 모순이 있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늘 그렇다.  둘 다 버거운 것이다.  외면하면 배부른 돼지가 된 것 같고, 거기에 집중하면 마음이 고달프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현실 도피형 인간이 되는 것인지도...;;;

하여간. 이 책은, 가난하고 아프고, 그리고 처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정의 과잉 없이 담백하게 쏟아내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아프고 가혹한데, 그것을 말해주는 작가의 목소리는 고저 없이 침착하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과 고난이 더 현실로 느껴진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욕한 녀석 집 유리를 깨버렸을 때, 씩씩대는 아이를 향해 아버지는 차분하게 말한다.

"유리를 깨는 것은 잘못한 거야. 아버지는 난장이야."

더 이상의 반론도, 변명도 할 수 없는 한마디. 지극히 사실을 전달한 한마디... "아버지는 난장이야."

나는 이 대목에서 덜컥 울어버렸다.  당신의 슬픈 마음은 감추어버린 채, 일생이라는 시간을 담보로 체득한 그 깊은 절망이 한마디 문장에 모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묘사한 장면에선 허탈했다.  선거 때만 되면 찾아와 시장 사람들의 투박한 손을 잡고 잘 해보겠다고, 밀어달라고 허리를 90도 숙이건만, 선거가 끝나면 그들의 허리는 도로 뻣뻣해진다.  언제 그런 손을 잡아보았냐는 듯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 시절의 정치인이 지금의 정치인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사회는 분화되고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사람들은 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더 보드라운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지만 정치 의식 수준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오늘날 시사저널의 사건을 보아도, 포스코 사태를 보아도...

결국 자살로 마감한 난장이 아버지, 그가 굴뚝 위에서 마지막으로 내려다본 세상은 어떠했을까.  가난한 아버지가 물려준 생은 자식들의 생에서도 여전히 비참하고 가혹하다.  작업 도중 졸기만 해도 핀으로 찔러버리는 작업 감독이라니...(지금이야 그런 환경을 상상할 수 없지만, 글쎄... 외국인 노동자한테 하고 있는 짓을 떠올린다면 과연...ㅠ.ㅠ)

나는 작가가 섣부른 희망을 제시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그토록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고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어! 라고 말했다면 그건 거짓말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작가의 몫은, 이런 세상이 있어... 우리가 살았던 세상이야... 라고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다음에 마음이 움직여지고 행동으로 변화되는 것은 독자가 가져야 할 몫이다.  소설 속 이야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고, 남의 이야기라고 단정할 일도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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