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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평점 :
사실 난 조금 무거운 주제를 좋아하는 편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싫어하거나 기피하진 않지만, 기왕이면 뭔가 그럴싸한 주제를 담고 있거나, 심각한 내용... 그래서 내가 이것을 보았다!라는 흔적이 거창하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한다.(절대 좋은 습관은 아니나 취향이 그렇다.)
그래서 만화책을 골라도 깊이 생각할 무언가가 있으면 더 좋아한다. 사회적 메시지 없이 너무 가볍게 웃고 끝나는 작품은, 웃고 끝내기만 할 뿐, 소장하고 싶은 마음은 푹! 줄어든다.
그런데, 때로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고 진지한 내색 하나 없이도, 몹시 진지하고 또 깊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난 이 작품을 보면서 그같은 기분을 느꼈다. 시대적 배경과 내용을 보면 조정래씨의 "아리랑"이 떠오르지만,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을 하고 주고 있는 메시지도 확연히 다르며, 글의 느낌도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차이가 있다.
조정래 아리랑은 길기도 하지만, 일단 내용이 무겁고 어둡다. 일제 시대를 다루고 있는 작품 배경이 밝다는 것이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굉장히 기합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정치도 모르고, 나랏일 전혀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망원경 없이 현미경 없이, 자연의 눈 그대로 지켜보는 이 책은 지극히 담백하고 소탈하며 그래서 맛있다.
딸자식일지언정 아들을 낳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질투를 느끼는 어머니의 마음이란...
늙은이에게 시집 온 어린 각시가 안쓰러워 끝내 등떠밀어 보내주는 영감님의 마음이란...
권정생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언어란 가식 없이, 꾸밈 없이 자연스러워 멋있는 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 중심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있었고, 그들의 마음이 있었다.
별 다섯의 행진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참 따스하고 아름다운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