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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교향악 ㅣ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6
앙드레 지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1년 6월
평점 :
'전원교향악'이라는 제목만 떠올리면 몹시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시골이 떠오르며 평화로운 내용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알게 한 것은 만화 "웍더글 덕더글"이었다. 코믹 만화였고, 아주 특이한 가족 이야기였는데, 거기서 '한 무협' 하는 엄마의 소녀시절 이야기에 등장한 책이다. 하늘이의 선생님은 어린 시절 '전원교향악'을 읽던 한 소녀를 사랑하여 첫사랑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하늘이의 어머니가 바로 그녀였다. 그러나 첫사랑 소녀의 앳된 모습은 사라지고 너무나 전형적인 아줌마 모습에, 몸매도 망가졌고, 덤벙거리며, 말도 험해진... 사실은 옛 적 모습도 자신만 그렇게 보았다는 진실을 알아차린다는... 뭐 그런 내용이 진행된다.
아무튼 당시 '전원교향악'을 읽는 소녀의 모습-으로 추억되어졌길래 난 이 책을 아주 낭만적인 책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었다. 낭만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고, 뭐랄까... 인간의 이중성과 추함을 드러내는 내용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제르트뤼드는 장님 소녀다. 목사님 집에 맡겨지면서 문제는 발생하는데, 소녀는 세상 일에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윤리도 지성도 모두 백지상태였다. 그 무지를 계몽시키겠다고 목사는 덤벼들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녀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탐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들도 소녀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목사는 둘의 관계를 반대한다. 목사의 부인은 남편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불안해 하지만 목사는 자신의 정결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스스로 꺼림칙하게 느껴질 때에도 애써 부정했다.
제르트뤼드는 아름답게 성장했다. 완연히 숙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눈까지 떠서 그토록 고대하던 세상을 보았지만 그녀가 바라보게 된 세상은 기대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꿈꾸던 것과 현실의 차이는 무서웠다. 그리고 스스로가 범한, 빠져버린 늪 또한 자각해 버린다. 결국, 그녀는 불행한 끝으로 생을 마감한다.
목사의 아들도, 아내도... 모두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한다. 작품의 결말을 보면서 "운수좋은 날"이 떠올랐다. 제목은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해놓고, 내용도 운수가 좋은 것처럼 가는 듯 했지만, 결국엔 아내가 죽어버리는, 최악의 운수나쁜 날이었다는 반어... 이 책의 제목과 내용도 그렇게 다가온다.
처음 제르트뤼드가 자신이 상상하고 느끼는 세상을 언어로 풀어나갈 때와 눈으로 확인할 때의 괴리감과 망가져가는 그녀와 목사, 또 그 가족들이 관계 등이...
소담출판사 책으로는 고전을 주로 구입해 본 편인데, 저렴한 가격이 일단 맘에 들고 짧은 페이지도 맘에 든다. 다만 비닐 느낌의 커버가 역시나 싼 느낌을 주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뭐... 그래도 즐겁게 잘 읽었다.^^